2017. 8. 15. 09:59ㆍ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여름의 뭉게구름과 가을의 높은구름이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던 지난 8월 12일,
갑작스럽게 짐을 챙겨 경북 영양 반딧불이생태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바로 2017년 페르세우스별비를 영접하기 위해서였죠.
올해 페르세우스별비는 월령도 그렇고 당일 일기예보도 그렇고 사실 관측이 어려운 별비였습니다.
그래도 별지기로서 1년만에 찾아오는 별비를 영접하는데 소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다녀왔죠.
무엇보다도 매년 메시에마라톤에 참석하듯 페르세우스별비 영접 역시 매년 거르지 않고 나가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지난 4월 한차례 이곳을 방문하여 정말 손에 한움큼 잡힐것 같은 진한 어둠을 맞고 왔었습니다.
4개월만에 다시 찾은 반딧불이 생태공원에는 진한 풀냄새들이 낮게 깔려있었고,
기대에 참으로 걸맞게도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
그래도 짐을 풀고 오롯이 밤을 기다렸습니다.
사진1> 작년에 이곳 반딧불이생태공원에서 맞은 페르세우스별비.
지난 11일 밤, 아쉬운 마음에 작년의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바로 그 순간 그 곳이 너무나도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안좋은 월령과 일기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길을 나서게 되었죠.
촘촘한 이슬마냥 비가 흩뿌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저녁 8시가 지나자 풀밭에서 반딧불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의 별을 기다리는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반딧불이의 영접을 받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치 동화 속 요정의 나라에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반딧불이의 영접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습니다.
위성사진을 보며 자정 전후로 하늘이 열릴 거라는 희망을 애써 추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보슬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진 2> 하늘은 내내 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쪽 산봉우리로 달이 뜨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하늘이 틈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해간 두 대 카메라에 별초점을 맞추고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CBS 레인보우의 디제이들께서 혼자 있는 외로운 밤을 달래주었습니다.
간간이 페르세우스별비가 있는 날이라며 안녕바다의 '별빛이 내린다'라든가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같은 음악이 흐르더군요.
모든 게 좋았습니다.
틈이 보이기 시작한 하늘 사이로 북쪽으로는 카시오페이아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머리위로 백조와 거문고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구름이 걷혀들때 빛나기 시작하는 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순간 북쪽 구름을 뚫고 커다란 별똥별 하나가 헉...소리를 낼틈도 없이 스쳐지나갔습니다.
흘러가는 구름들에 별빛이 쓸리기를 반복하길 30여분,
하늘은 다시 구름 속에 잠겨들고 저의 기다림은 다시 계속되었습니다.
새벽 2시경,
몇몇 플레쉬 불빛들이 제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더군요.
올라온 분들은 충남대 천문학과 학생들이었습니다.
영양 반딧불이천문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과 함께 페르세우스별비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하더군요.
잠시 후 반딧불이천문대를 맡고 계시는 박찬 선생님께서도 오셨습니다.
사실 박찬 선생님은 구면이어서 천문대에 들러 먼저 인사를 드릴까 했었는데
때마침 내리는 보슬비에 펼쳐놓은 장비를 보호하느라 들리지 못했었습니다.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했지만 한 편 이렇게 만나뵈니 반갑기도 했습니다.
박찬 선생님께서는 페르세우스별비를 보러 나간 학생들이 얼마 안 있어 들어올거라 생각했는데
오랜시간동안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돼서 나오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제가 있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왜 안들어오는 줄 알았다며 껄껄 웃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오늘 하늘이 절대 열리지 않을거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같이 천문대에 가서 술 한잔 하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계속 위성 사진을 보며 2~3시경 하늘이 열렸다가 30분 정도는 유지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경험많은 선생님께서 그 곳의 지역적 특성을 근거로 말씀하시니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영상> 그날의 하늘 : 그냥 구름뿐입니다. ^^;;;
그래도 간간이 틈새로 보이던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왔습니다.
잠시나마 젊은 천문학도들과 아시아 1호이자 대한민국 유일의 밤하늘보호구역을 이끌고 계시는 박찬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하늘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돗자리를 펴고 앉아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그사이에서 퐁퐁 피어나고 있는 파란 우주가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젊음!
그것을 감히 수식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요?
잠시 후 박찬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다독여 내려가셨습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열릴 줄 몰랐고, 더더군다나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법 빗줄기가 느껴지는 비였죠.
서둘러 장비를 걷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릴리즈 셔터를 끌 때 아쉬움이 정말 크게 느껴졌습니다.
돌아오며 그 시간과 공간을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그날 별똥별은 한 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얇은 구름이 지나던 머리 위 어느 하늘 저편에서 번개일지도 모를 섬광을 세 네게 정도 더 느꼈을 뿐입니다.
하지만 코스모스가 빽빽하게 피어있는 수풀에서 반딧불이가 피어오를 때는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의 만화속 주인공이 된듯한 착각에 빠졌죠.
동쪽 산 봉우리에서 달이 뜰 때,
하늘과 내 주위를 반투명한 빛으로 영롱하게 감싸주는 달빛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내가 이곳에 서 있기를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NS에서는 전국 곳곳의 페르세우스별비 관측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분들이 있었고,
이곳에서 홀로 하늘을 바라보는 저를 응원해 주는 고마운 친구분들이 있었습니다.
틈틈이 열리는 하늘에서 물먹은 별빛을 쏟아내던 찬란한 별들이 있었고
그 별빛에 함께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 대한민국의 밤하늘 보호구역을 지키는 별지기가 있었으며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퐁퐁 피워내는 파란 우주가 있었습니다.
항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떤 시공간이 펼쳐지든, 그곳, 그 시간에 치뤄야 했던 가장 비싼 것은
그곳, 그 시간에 있고자 하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 비싼 마음을 쓸 수 있었다면 그 시공간으로부터 그에 걸맞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죠.
2017년 갑작스러운 페르세우스별비 여행에서 비록 그 별비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시공간은 언제나처럼 그 때 그 시간에 걸맞는 추억을 제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시공간에 머리숙여 제 고마움을 드립니다.
사진 3> 돌아오는 길의 풍기 IC
그 전에는 큰맘을 먹어야 갈 수 있었던 강원도가 제 뒷마당이 되었고, 저 멀리 영호남 역시 제 옆집마냥 들를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곳 풍기IC도 올해 벌써 네번째로 지나다니는 익숙한 길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어느 곳에서든 찬란한 별빛과 별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오가는 길이 전혀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별지기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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