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1. 20:09ㆍ1. 별과 하늘의 이야기/하늘앓이 - 별지기의 이야기들
세월호 4주기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행입니다.
정부주관의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목포신항에는 바다에서 끌어올린 세월호가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광장에서, 안산에서, 목포에서, 진도에서.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기억의 현장 중 하나로서 그날, 그 바다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동거차도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동거차도를 향하는 발걸음이 이상하게도 쉽게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휴가를 내면서도,
동거차도에 민박을 잡으면서도,
토요일 오후 짐을 챙기면서도,
일요일 이른 새벽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까지도
'동거차도를 다시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뜬 눈으로 10여분을 누워있다가 일어났습니다.
작년 1월 동거차도에 다녀오며 아이들에게 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작년과 달리 동거차도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짐은 최대한 단촐하게 차렸습니다.
밤새 달려 도착한 진도 팽목항에서 동거차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뜨끈뜨끈한 선실에 앉자 피곤이 몰려왔고 이내 잠이 들어 버렸죠.
그렇게 누워 얼마를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잠결에 설핏 뱃고동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실 밖을 내다보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습니다.
어느덧 두 시간 반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배는 벌써 동거차도 동육리 항구에 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동거차도에 들어왔습니다.
작년 4월. 오랜동안의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인양되었습니다.
따라서 동거차도 산등성이에 세워진 세월호 인양 감시탑에도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예상대로 감시탑으로 오르는 길은 수풀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빛바랜 노란리본들과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는 붉은 동백꽃들이 감시탑으로 오르는 길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흙길이 드러나 있었던 작년과 달리 이제 오랫동안 사람이 찾지 않은 듯한 이 길엔 잡풀만이 무성했습니다.
4년 전 오늘인 4월 15일,
많은 아이들이 설레는 가슴을 안고 여행가방을 꾸렸을 것입니다.
서해를 가로질러 내려오던 그 배는 단순히 사람과 화물을 실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설레임과 꿈과 이야기가 함께 실려있었죠.
하지만 그 아픈 시간은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2018년 4월 16일 아침의 바다는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 배는 왜 가라앉았을까요?
선원들은 왜 아이들을 선실에 가둬둔 채로 나왔을까요?
해경들은 왜 그토록 구조에 소극적이었던 것일까요?
언론에서는 어떻게 전원구조라는 황당한 오보가 터져나온 걸까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4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어느 하나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 4월의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습니다.
남과북의 정상이 만났고, 저는 제가 살아생전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품게 되었습니다.
그 희망에 아이들이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희망은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잔인한 희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암흑과도 같았던 지난 9년 간의 대한민국을 돌아보건대
이것도 분명 우리가 간절히 바랬던 희망임에 틀림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이곳 동거차도 역시 희망이 싹트는 섬이었습니다.
작년 1월의 동거차도는 무척 외로운 섬이었습니다.
주민 분들이 대부분 뭍의 친척집으로 나가셔서 섬은 거의 텅 빈 상태였고 추운 겨울이다보니 섬 전체가 그저 착 가라앉은 잿빛이었죠.
매서운 바람이 섬을 할퀴고 갈 뿐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명절을 맞아 인양바지선까지 자리를 뜨면서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와 그 세월호를 무겁게 지고 있던 동거차도만이 있었을 뿐이죠.
하지만 2018년 4월에 찾은 동거차도는 완전히 다른 섬이었습니다.
제법 많은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많은 주민들이 계셨고, 섬은 온통 피어오르는 푸른 잎들과 새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왜 제가 동거차도에 오기 힘들어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 동거차도를 다녀오고 너무 우울했었던것 같습니다.
그 우울했던 느낌 때문에 동거차도에 다시 가는 것이 힘겨웠던것 같습니다.
이번에 동거차도를 다시 찾은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
결코 우울한 섬이 아닌 동거차도, 가득 활기가 넘쳐나고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르는 동거차도를 만났으니까요.
창대한 바다에 잔잔한 파도가 치고 그 한가운데를 조각배 하나가 넘실넘실 가르며 미역을 따는 풍경은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섬고개를 넘어 지난 번에는 가지 않았던 동막리에 접어들자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날 동막리의 아름다운 풍경 위로 무리해가 떠올랐죠.
동막리에서 바라본 4월 15일 저녁의 아름다운 낙조풍경입니다.
태양이 마치 두 개가 있는 듯 보입니다.
동거차도 주민분들은 세월호 사건의 또다른 피해자들이십니다.
경제적 피해를 떠나 어마어마한 사건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으니 심리적인 트라우마도 상당하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이렇게 남아 있음을 보고 정말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섬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함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대 로마의 저술가 마크로비우스는 인간의 영혼이 미리내에 거처를 두고 있으며 삶을 마친 후 다시 이 불멸의 빛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을 믿습니다.
아이들은 먼저 그 불멸의 빛으로 돌아간 것 뿐이죠.
저 역시 머지 않아 나의 빛 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은 그 때까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동거차도 세월호 인양감시탑에서 아이들에게 결코 너희들을 잊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동거차도 세월호 인양감시탑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작은 일 하나를 해 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별지기들 사이에서 고래은하라고 불리는 NGC 4631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천체라는 의미를 부여했고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서 이를 사진으로 담은 천문력을 만들었죠.
그 바다에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4월 16일 정오.
1박 2일동안 맛깔난 밥상을 차려주신 민박집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동거차도를 나섰습니다.
팽목항에 돌아왔을 때 팽목항 분향소에서도 조촐하게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향소에 들어가 제가 할 일을 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제단에 천문력을 올리고 이 일에 함께 한 별지기들의 마음을 올리는 일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습니다.
설령 목소리 높여 얘기하거나, 직접 일어서 주먹을 들며 요구하는 사람은 소수일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똑같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별지기들도 4월이 되면 북쪽 하늘 높이 떠오른 고래은하를 보며 절대 잊어서는 안될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추악하게 드러났었던 우리의 민낯을 되새길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리라 다짐할 것입니다.
이러한 익명의 대중이 가지고 있는 선의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그 아픔을 삭여가며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유가족분들께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전 이야기 : 2017년 1월, 동거차도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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