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8. 01:04ㆍ1. 별과 하늘의 이야기/관측기
북쪽 하늘은 언제나 볼 수 있는 하늘입니다.
그 하늘에 북극성이 있습니다.
430광년 거리에서 지구의 북극점을 알리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죠.
북반구에 사는 모든 별지기들은 관측 시작 전에 북극성을 만납니다.
극축 정렬 때문인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극성은 대개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는 별이죠.
안녕하세요.
관측 왔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죠?
그리고 대충 정렬한 망원경과 파인더를 확실하게 정렬합니다.
그러면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하죠.
정렬이 망가지지 않는 한 북극성을 다시 찾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된다는 건 북극성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제 다른데 구경 가겠습니다.
혹시 인사 못드리고 가도 양해해 주세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데 가지 않고 북극성을 봤습니다.
북극성을 여러 번 봤음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관측 때마다 뭔가 끄적거리기만 할 뿐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나를 반성하는 첫 번째 관측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1. 약혼반지 (Engagement Ring) 자리별
예전에는 북쪽 하늘은 일년 내내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아무리 시골이라도 엘이디 가로등이 대중화된 대한민국에서 낮은 고도 관측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극성과 북극성을 품고 있는 작은곰자리는
빛공해의 영향이 덜 미치는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언제든 관측할 수 있는 진정한 별자리입니다.
흔히들 북극성과 그 주변에 도열한 별들이 만드는 고리 모양의 자리별(Asterism)을 '약혼반지'라 부릅니다.
고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2등급의 북극성은 이 약혼반지에서 다이아몬드인 셈이죠.
그런데 이 약혼반지는 어그러진 약혼을 상징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반지가 동그랗지 않고 찌그러져 있다는 점.
두 번째는 북극성은 사실 이중별이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봤을 때 보이는 북극성의 짝꿍별이 마치 깨진 다이아몬드 조각처럼 보인다는 점 때문입니다.
스토리 측면에서 보자면야 희극보다는 비극이 더 무게감이 있으니
하늘에 비극의 약혼반지가 있다는 것이 좀더 그럴듯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구태여 저걸 '약혼반지'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더군요.
그냥 '하트'라고 하면 더 상큼하고 형태적으로도 적절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 관측기를 찾아보니 2021년 4월 10일 관측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혼반지는 사랑이나 기쁨이라는 감정이 아닌
이별이나 슬픔을 품은 반지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우울함을 경남지부 백현숙 선생님께서 깨 주셨다.
이건 하트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건 하트가 맞다. 그리고 하트가 훨씬 낫다.
먼 길을 달려 관측지에 왔는데 깨진 약혼반지보다는 하트를 만나는 게 훨씬 낫다.
북극성은 하트를 묶은 점이다. 이것도 좋다...
그러고보니 이 자리별을 하트로 보는 게 더 낫다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C11인 제 망원경 첫눈이로는 이 약혼반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슈미트 카세그레인 특유의 기다란 초점거리가 가져다주는 극강의 배율 때문인데요.
첫눈이 초점거리 2,800밀리 / 접안렌즈 초점거리 41밀리(텔레뷰 판옵틱)
현재로서는 이 조합이 제가 구현할 수 있는 최저배율(68.29배)입니다.
텔레뷰 판옵틱 41밀리의 겉보기 시야가 68도라서 수치상 시야각은 거의 1도에 육박하지만
지름 0.66도의 약혼반지가 한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걸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한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니 당연히 전체 형상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망원경을 하나 더 폈습니다.
흰둥이에 항상 실려 있는 소형 굴절망원경 eFrantis 66밀리 ED APO입니다.
초점거리 400밀리 / (이 망원경에는 너무나 과분한) 접안레즈 13밀리(텔레뷰 에토스)
배율 30배, 시야각 3도 이상인 이 화각에서는 약혼반지 전체 형상이 너무나 어여쁘게 보였습니다.
이 작은 망원경은 볼 때마다 너무나도 선명하고 쨍한 장면에 항상 놀랍니다.
사진촬영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냥 눈으로 보는 데에는 꼭 비싼 망원경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죠.
2. 깨진 다이아몬드
이제 깨진 다이아몬드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첫눈이(C11)에서는 북극성과 북극성의 짝꿍별이 확연히 구분되어 보입니다.
66밀리 망원경에서는 북극성의 빛무리에 파묻혀 잘 구분되지 않죠.
하지만 첫눈이를 통해 눈에 익혀서인지
빛무리 속에서도 살짝살짝 짝궁별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작은 망원경으로는 시상의 영향을 많이 받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그건 조건일 뿐이고
함께 보이는 두 개의 별은 '깨졌다'라는 표현과는 아무 상관 없이 너무너무 아름답기만 합니다.
딥스카이 원더스를 보니 작은 짝꿍별(북극성 B)은 창백한 푸른빛으로 보이지만
실제 색깔은 북극성과 비슷한 색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을 읽고 다시 보니 북극성 B에서 정말 옅은 파란색이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관측현장에서 흔히 있는 현상이죠.
이런 일은 그냥 즐기면 될 일입니다. 구태여 각인효과라는 딱딱한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말이죠.
북극성 B에서 나타나는 이 효과는 바로 옆에 있는 북극성 A가 압도적으로 밝기 때문일 겁니다.
상대적으로 어두워보이는 게 파란색으로 느껴지는 거죠.
3. 지구의 자전축을 바라보자.
이렇게 북극성을 관측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지만
제게 정말 의미가 있었던 점은 지금부터입니다.
바로 지구의 자전축이 되는 천구의 북극점(NCP : North Celestial Pole)을 바라보는 경험이죠.
별지기에게 북극성은 극축을 맞출 수 있는 별이기 때문에 의미가 큽니다.
천구의 북극점을 축으로 지구는 오른쪽으로 자전합니다.
그래서 하늘은 동에서 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죠.
바로 이 축에 망원경을 정렬하고
자전을 상쇄하도록 자전 반대 방향으로 망원경을 돌려주는 기계(적도의)를 부착하면
움직이는 하늘을 고정된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북극성이 이 축에서 약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맞춰주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를 '극축정렬'이라 하며 '극망'이라고 부르는 가늠자로 맞추게 되죠.
모든 적도의에는 이 극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앱에서 관측자의 위치와 시간에 따라 북극성이 천구의 북극점에서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확인한 후
극망을 통해 북극성을 동일한 위치에 가져다 놓으면
이른바 망원경의 '극축정렬'이라는 걸 완료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가만히 되새겨보니
여전히 제가 집중하는 것은 천구의 북극이 아닌 북극성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천구의 북극점에는 어떤 별도 없고 그저 텅빈 검은 밤하늘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역으로 천구의 북극을 정작 본 적이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극축을 정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임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천구의 북극점을 한 번 겨냥해 보았습니다.
약혼반지 자리별에서 뿔을 만드는 8등급 별과 북극성을 잇는 가상의 선을 만들어
반대방향으로 거의 비슷한 거리를 접안렌즈의 한복판에 넣으면
지구의 자전축인 천구의 북극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구의 북극점을 접안렌즈의 한 가운데로 옮겨왔습니다.
물론 그곳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저 검은 하늘만이 있었죠.
하지만 그 순간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지구의 자전축에 훅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죠.
지구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온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그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그 하늘에
마치 스타워즈의 도입부처럼
글이 흘렀습니다.
세상 모든 별지기가
북극성을 주목한단다.
북극성은 주목받는 별이지.
그런데
주목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주목받고 싶어해.
명예에 굶주려 있지.
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
그들로부터 상처도 받았고.
그런데
그건 비난만 할 일은 아냐.
잘만 통제하면
자기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니까.
어쩌면 그들은
북극성이 될 수 있을거야.
주목받을 수 있지.
자!
이젠 너에게 물을게.
주목받고 싶니?
"아니오!"
왜?
"중요한 건 남이 바라보는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거니까요!"
그래 바로 그거야.
북극성이 의미있는 건
북극성 자체가 아니라
북극성을 북극성으로 만들어주는
천구의 북극이 있기 때문이란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천구의 북극점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고
북극성은 그저
평범한 별이 될 거란다.
그러니
너는 진정한 북극점이 되어라.
누가 너를 바라봐주길 바라지 말고
네가 무엇을 바라볼지
항상 생각해라.
그러면
너 스스로가 방향이 될 거고
너를 찾는 이들에게
의미를 주게 될거야.
"제가 진정한 북극점이 되겠습니다.
날 지켜봐 주세요."
4. 북극성은 언제 천구의 북극점과 가장 가까와질까?
딥스카이 원더스에서 북극성과 천구의 북극점과의 거리변화를 설명하는 부분은
이 책을 번역하면서 느낀 여러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간단한 질문이라도 얼마나 정확한 답을 원하느냐에 따라서 그 대답이 얼마든지 복잡해질 수 있다"는 문장은 저에게는 화두가 되기도 했던 문장입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러나 북극성이 시인들이 묘사한 것처럼 전혀 움직임이 없는 별은 아닙니다.
우리 지구의 자전축은 북극성에서 약간 어긋나 있습니다.
진짜 천구의 북극점은 북극성에서 약 3/4도 벗어나 있죠.
방향은 북극성에서 작은곰자리를 구성하는 또 다른 2등급의 별인 코카브(Kochab),
즉 작은곰자리 베타(β) 별(Beta Ursa Minoris, UMi)쪽입니다.
북극성은 이 진북 지점의 주위를 원을 그리며 매일 약간씩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원의 크기는 향후 100년 내에 0.5도까지 줄어들게 되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태양과 달이 지구를 잡아당기면서 지구의 적도면을 황도면에 좀 더 평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지구의 회전력은 그 자전축의 방향이 서서히 변하는 이른바 '세차운동'이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세차운동은 천구의 북극점이 거의 원에 가까운 거대한 원을 그리게 만드는데 그 원은 약 2만 6,000년을 단위로 한 번 일주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북극성이 북극점에 가장 가까워질까요?
사실 그 답이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달이 만들어내는 중력영향의 변이가 18.6년 주기의 '장동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장동현상이란 회전축의 경사도가 흔들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장동현상을 모두 고려해보면 별들의 연주광행차는 초속 3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지구의 궤도 운동 때문에 해마다 극히 미미한 겉보기 위치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북극성 역시 자신의 고유운동이 있고, 태양에 대한 겉보기 운동도 있죠.
계산의 명수인 진 뮤스Jean Meeus는 이러한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북극성이 하늘의 북극에 가장 가까워지는 때가 2100년 3월 24일이며,
이 때 겉보기 분리각은 27분 09초까지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북극성만이 북극의 별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한편,
간단한 질문이라도 얼마나 정확한 답을 원하느냐에 따라서
그 대답이 얼마든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딥스카이 원더스 P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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