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C 6826 - 빛의 메아리

2023. 10. 18. 19:581. 별과 하늘의 이야기/관측기

맥동변광성(Pulsating Variable Star)이란게 있습니다.
'변광'이란 '빛이 변함'을 의미하고, '맥동'이란 일정한 주기의 움직임을 의미하니
'주기적으로 밝기가 변하는 별'이라는 뜻입니다. 

맥동변광성으로 잘 알려진 유형의 별이 '세페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s)'이죠.

1784년 존 구드릭(John Goodricke)이라는 영국 천문학자가

케페우스자리 델타별의 밝기가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면서

이후 주기적인 변광을 보이는 별들을 '세페이드 변광성'이라 했습니다.

 

이후 변광주기가 훨씬 짧고 밝기도 훨씬 낮은 변광성들이 구분되면서 
거문고자리 RR형이라는 유형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별들의 밝기 변화주기가 절대 밝기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규명되면서

천체의 거리 측정 범위가 수천만 광년까지 확대되었고 
허블상수 개념이 도출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허블상수를 정교화하는 것, 허블텐션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우주론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참고 : 허블텐션에 대하여)

 

아...근데 내가 왜 일케 재미없는 얘기를 하지?

 

뭐 그건 천문학자들이 알아서 할거고요.

 

맥동변광성이 만들어내는 빛의 메아리(Light Echo)라는 게 있습니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하는 별빛 때문에 

별 주위 먼지에 다른 밝기의 빛이 반사되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인데요. 

 

아쉽게도 눈으로 볼 수는 없고, 아마추어 망원경으로도 볼 수는 없습니다만, 

첨단 과학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동영상은 있습니다.

 

Credit: NASA, ESA, G. Bacon (STScI), the Hubble Heritage Team (STScI/AURA)-ESA/Hubble Collaboration, and H. Bond (STScI and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동영상> 고물자리 RS별이라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촬영한 허블우주망원경 사진으로 만든 동영상입니다.

               물흐르듯이 흘러 나가는 빛의 파동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죠. 

               물론 이 현상은 잠깐의 관측으로는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 이 동영상은 여러 주 동안 촬영된 사진을 모아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맥동성처럼 그 밝기가 변하는 행성상성운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NGC 6826이 그것입니다. 

이 행성상성운의 별명이 깜빡이행성상성운(the Blinking Planetary)이랍니다. 

 

행성상성운이 깜빡인다고???

 

행성상성운은 아시다시피 별이 돌아가시면서 우주에 내던지신 별의 유품세트입니다. 

별이 아닌데 깜빡인다는게 가능한 건가요?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NGC 6826을 찾아가는 길잡이 별인 백조자리 요타(ι)별은 23시 경 40도 고도를 지나네요. 

시간도, 고도도 관측하기 딱입니다.

 

북서쪽, 고도 40도 지점에 있는 백조자리 요타별

 

NGC 6826을 찾아가는 방법은 아주 쉬웠습니다.

백조자리 요타별이 4등급 별인데다가 고도도 충분히 높아 한 번에 파인더에 넣을 수 있었죠. 

백조자리 요타별에서 이어지는 6등급 별 한 개를 거치면 

마치 이중별처럼 나란히 서 있는 백조자리 16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약간 방향을 틀면 바로 NGC 6826을 만날 수 있죠.

 

NGC 6826 찾아가기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히 잘 맞춘 것 같은데 보이지 않더군요. 

행성상성운이라 하니 분명 별과는 다른 부~한 느낌의 천체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보기를 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비껴보기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화각 주위로 눈동자를 돌려봐도 불쑥 형태가 드러나는 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지도를 보고 파인더를 보고, 다시 접안렌즈를 들여다보기를 세 번 정도 반복했습니다.

분명 위치는 정확했습니다.

 

9등급 행성상성운이라는데...혹시 생각보다 너무 어두운 거 아닐까? 

 

딥스카이 원더스를 확인해보았습니다. 

 

NGC 6826을 찾는 팁이 적혀 있더군요.

백조자리 16별을 접안렌즈 한 가운데 두고 3분을 기다리면 NGC 6826이 한 가운데로 쏙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타이머를 열었습니다.

백조자리 16별을 한 가운데 겨냥하고 타이머를 눌러 3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접안렌즈를 들여다봤죠. 

 

그러자.

 

두둥!

 

드디어 NGC 6826이 눈에 확띠었습니다. 

별 사이에서 마치 별인 양 숨어 있었습니다. 

아련하게 느껴지는 청록빛이 "난 사실 별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진짜 딱 가운데 들어와 있더군요. 

 

그러고보니 아까 직접 찾아가봤을 때도 보였던 대상입니다. 

그냥 보통 별과 똑같이 느껴져 행성상성운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죠.

 

역시 '본다'는 것과 '알아본다'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C11 + Televue Panoptic 41mm = 68배율, Stellarium에 동일 조건으로 재연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Stellarium으로 재연한 NGC 6826의 모습입니다. 

현장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서쪽에 보이는 두 개 별, 즉 백조자리 16별은 동일 화각에 담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청록색이다, 청록색이다, 청록색이다..."라고 마법을 걸면 초록빛이 느껴지죠. 

부~한 느낌이 드는 것도 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일단 대상은 찾았습니다. 

 

이제 깜빡이는 걸 봐야죠?

가이드대로 비껴보기를 했다가, 바로보기를 해 봤습니다.

비껴봤다가 바로봤다가 비껴봤다가 바로봤다가 비껴봤다가 바로봤다가...

 

그랬더니 감이 확! 오더군요.

정말 깜빡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비껴봤을 때는 훅 부풀어 오르던 보풀이 바로봤을 때는 착 가라앉았습니다.

 

이건  '깜빡깜빡'의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아.... 그 느낌을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다니....이 단어머리의 빈약함이란...

그러니까 뭐랄까...'발롱발롱', '울끈불끈', '울룩불룩'의 딱 중간지점에 있는

뭔가 힘차게 부풀어 오르기를 반복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NGC 6826의 느낌을 살려보았습니다.

 

와! 얼마나 좋게요!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행성상성운의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다왔는지 모릅니다.

계속 보고 있자니 가라앉는 속도도 부드러워지면서 

 

펑  ~~~~ 홀쭉 ~~~~~ 펑 ~~~~~ 홀쭉 ~~~~~~ 펑 ~~~~~ 호올쭉 ~~~~~ 펑 ~~~~~ 호오올쭉 ~~~~~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런게 보너스지!

별지기의 보너스!

 

너 너무 멋지다.

너 내 행성상성운 하자!

 

아니... 가만...

 

그러고보니 행성상성운은 넘 멋진 애들이 많잖아.

야를 내 행성상성운 하면 나머지 그 멋진 애들은 어떡하지?

 

아! 

그래그래.

 

너 내 행성상성운 '중' 하나 하자!

 

NGC 6826이 이날 밤, 제 관측을 아주아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행성상성운은 스스로 빛을 내며 빛의 밝기가 변하는 맥동변광성과 같은 그런 천체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마어마한 거리를 날아온 미약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올 때 

좀더 민감한 부분에 떨어지느냐 아니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죠.

 

비껴보기를 했을 때 빛을 받아내는 간상체가 빛에 더 민감하다는 건

피식자로 살아야 했던 인류의 진화역사가 반영된 것일 겁니다.

즉, NGC 6826의 멋진 모습은 그 가혹했던 역사가 준 선물이죠. 

 

부풀기를 반복하는 NGC 6826을 보면서 

저는 '깜빡임' 보다는 '빛의 메아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빛의 메아리를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NGC 6826이 충분히 달래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너를 '깜빡이행성상성운'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너를 '빛의 메아리 성운'이라 부를란다. 

 

그 이름이 훨씬 너한테 잘 맞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