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보석 열전 1. M76 - 하늘무한별빛광채

2023. 10. 25. 13:201. 별과 하늘의 이야기/관측기

1. 결코 작지 않은 행성상성운

페르세우스자리 피(φ)별 바로 옆에 있는 M76에는 '작은 아령(Little Dumbbell)'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작은 아령'이라는 말이 '큰 아령'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죠.
그 큰 아령은 여우자리에 있는 행성상성운 M27이랍니다.

M27은 아무 수식어도 붙지 않은 아령성운(Dumbbell Nebula)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죠. 

 

많은 분들이 M27과 M76을 비슷한 형태로 봅니다.
거기에 M76이 더 어둡고 작아보여 '작은 아령'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M76에게 '작은'이라는 표현은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시에 목록 상에는 네 개의 행성상 성운이 있습니다. 
M27, M76외에도 M57과 M97이 있죠.

M57은 그 유명한 고리성운입니다. 
아마 아마추어 천문인이라면 거문고자리의 이 유명한 성운을 직접 보지 않으신 분은 없으실 겁니다.

그런데 M76은 고리성운보다 훨씬 큽니다!


고리성운이 86" x 63" 의 크기를 가지고 있음에 반해 
M76은 163" x 107"로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크기를 가지고 있죠.

이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M76이 결코 고리성운보다 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M76이 왜 작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마도 '작은 아령'이라는 M76의 별명이 주는 선입견과 훨씬 어두운 밝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M76의 실제 크기는 
자기에게 '작은 아령'이라는 별명을 짓게 만든 
'큰 아령' M27과 동일한 지름 3광년이었습니다.

즉 M76은 멀리 있고 그래서 어둡게 보이는 천체일지는 몰라도 결코 작은 천체는 아니었습니다. 

'작다'고 오해되는 M76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M76은 '작은 아령'이라는 별명 외에도 '코르크', '나비'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이런 별명이라면 M76의 부당한 누명을 벗겨주기에 충분하겠죠.

하지만 이왕 누명을 벗겨주기로 마음 먹은 거 
새로운 나만의 시각을 헌정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2. M76

M76을 찾아가는 방법의 전부는 페르세우스자리 피(φ )별을 찾는 것입니다. 

페르세우스자리 피 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시작합니다. 
페르세우스자리에서 피 별을 찾으면 오히려 찾기 어렵죠. 

첫째. 카시오페이아의 두 개 뿔인 알파별과 델타별을 밑변으로 하는 삼각형을 그어서 찾습니다. 

 

그림 1. 페르세우스자리 피별을 찾는 법 1.

 

이 방법은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꼭지점을 페르세우스자리 피별이 아닌 안드로메다자리 51별로 잘못 찍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2> 삼각형을 그을 때 안드로메다자리 51별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페르세우스자리 피별을 제대로 찍은 건지 확인하기 위해 
두 번째 방법으로 검증합니다. 

카시오페이아자리 감마별과 안드로메다자리 감마별을 잇는 일직선을 긋는거죠.
그 선의 중간지점에 걸리는 별이 페르세우스자리 피별입니다. 

 

그림 3> 페르세우스자리 피별을 찾는 두 번째 방법


이제 다 찾았습니다! 

페르세우스자리 피 별을 길잡이 망원경(파인더)의 한 가운데 넣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오각형을 볼 수 있죠. 

 

그림 4> 표준 길잡이 망원경으로 겨냥한 페르세우스자리 피별 (φ Per) - 오각형이 보이시나요?

 

그림 5> 오각형을 그어 보았습니다.


M76은 페르세우스자리 피 별과 밑변을 이루는 7등급 별에서 반대편 대각선으로
밑변의 3분의 1 길이 지점에 있습니다. 

 

그림 6> M76의 위치


저는 길잡이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찾는 걸 좋아합니다.

 

길잡이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의 위치를 겨냥한 후 접안렌즈를 들여다봤을 때 
대상이 딱 가운데 들어와 있으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게 없죠. 

 

낚시 하시는 분들은 손맛을 느낀다는 표현을 합니다. 
저는 바로 이때 '눈맛'을 느낍니다. 

그림 7> 66밀리 구경에 33배율로 바라본 M76

 

그림 7>을 보면 알 수 있듯 M76은 확실히 작게 보입니다.
하지만 점도 아니고 빤빤한 빛도 아닌 보풀 이는 우둘두둘함이
자기는 별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림 8> 279mm 구경에 68배율로 바라본 M76

개인적으로 그림 8>과 같은 그림은 
접안렌즈를 통해 바라 본 대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서 좋아합니다. 

천체 관측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망원경으로 바라본 대상은 확실히 크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크게 보인다는 건 광학장비가 해 주는 게 아니라 
관측자가 직접 얻어내는 것입니다. 

접안렌즈에 눈을 파묻고 진득하게 바라봐야
저 너머에 있는 친구도 자기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느끼죠. 
그 친구가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때부터입니다. 

 

그림 9> 68배율, 진득하게 바라봤을 때 서서이 모습을 드러내는 M76


M76은 보면볼수록 입체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훨씬더 크게 다가옵니다. 
마치 우주공간이라는 검은 헝겁의 결이 뜯어지면서 솜털이 툭 튀어나온것처럼 보이죠. 

 

이러한 입체감과 밝기 차이에서 오는 단절감 때문에 NGC 목록에는 두 개 천체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더 밝은 부분이 NGC 650, 이보다 흐린 부분은 NGC 651이죠.

 

하지만 M76은 엄연히 한 천체입니다.

죽어가는 별에서 발생한 양극성 폭발과, 그 폭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점으로 인해 혼동을 불러 일으킨 것 뿐이죠.

 

오늘날의 고성능 천체망원경으로 촬영된 사진은 하나의 행성상성운인 M76의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촬영된 M76, 출처 : 딥스카이 원더스 10p.

 

마치 땅콩같은 모습을 뜯어뜯어보다가 배율을 높여봤습니다.

행성상성운은 가능한한 고배율로 봐야 한다고 하죠. 

검은 하늘과 희미한 빛무리를 뿌리는 대상의 콘트라스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림 10> 279mm구경, 133배율로 바라본 M76

 

133배로 바라본 M76의 모습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천체가 자기만의 배율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68배율에서는 땅콩모양으로 보이던 M76이 133배율에서는 직사각형으로 보였습니다.

밝은 구체의 측면을 감싸고 있는 희미한 부분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죠.

 

그림 11> 133배율로 바라본 M76의 세부, 두 개 별이 마치 M76을 매달아 놓은 핀처럼 보였습니다.

 

직사각형으로 보이는 한편 좀더 밝게 보이던 구체는 여전히 구체임을 말해주는 빛무리가 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비로워 보였죠. 

 

 

3. M76을 위한 헌사

 

미국의 유명한 아마추어 천문인 스테판 제임스 오미라(Stephen James O'Meara)는 M76관측기에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적었습니다.

 

불행히도 메시에 천체의 인기는 
망원경을 통해 얼마나 세세한 모습을 볼 수 있는가보다는 
대상이 얼마나 밝고 

얼마나 크게 보이는가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M76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는 
작은 망원경을 가진 별지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묘한 세부의 다양성에 있습니다.  

 

 

M76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느꼈던 안타까움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메시에 목록 상의 천체들은  안타까움이 묻어 있습니다. 

우선 태생이 각각이 목적이 아닌

회피해야할 천체라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죠.

 

메시에 천체가 대개 초보자들이 접하는 천체다보니

한 번 훑고 마는 쉬운 천체로 간주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M76은 그 목록 중에서도 어두운 천체다 보니 

더더욱 주목받기 어려운 천체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관측을 통해 M76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지 경험할 수 있었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M76을 찾아오기까지 'W'자를 봐야했고, 삼각형을 그려야 했고, 직선을 그려야 했고,  오각형을 그려야 했습니다.

M76을 찾고 나서는 땅콩모양을 봤다가 직사각형을 봤다가 그 속에 잠겨든 구체의 모습도 느낄 수 있었죠.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가 생각났습니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로 시작되는 이 시는 

최첨단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미츠코시 백화점 도쿄 본점을 보고 영감을 얻어 지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천정까지 뻥뚫린 건물에 다양한 도식이 어우러진 화려한 백화점 내부에서 

건축기사였던 이상이 느꼈을 시상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죠.

 

저는 M76도 이와 비슷한 헌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M76을 관측한 곳이 조경철 천문대인데 

조경철 천문대는 별지기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차와 사람들이 몰리는 곳입니다. 

 

이제 모든 재료가 모였으니

감히 이상의 흉내를 내어 한 번 엮어보겠습니다. 

 

 

하늘무한별빛광채

 

오각형의측면의오각형의측면의오각형의측면의오각형의측면의땅콩.
W자원운동의W자원운동의W자원.
커피가통과하는혈관의커피향기를투시하는별지기.
하늘을모형으로만들어진플레네타리움을모형으로만들어진하늘.
반잘린하늘의말(그여인의이름은안드로메다였다)
별빛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이중성단같습네다.
삼각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별들.
셀레스트론접안부를점령한페더터치가맞이한광덕산의가을.
쾌청의하늘에붕유하는ISS.햇빛을반사하고있다.
산꼭대기정원.화장실을찾아헤매는별지기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작은아령
야간모드전자성도에내리워진일개의발칙한전조등
차문-의내부의차문-의내부의자동차의내부의히터튼내부의핫팩두른내부의별지기
천문대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남녀가헤어진다
별빛엎질러진별똥별이칠성전망대에떨어진다
어둠을짓밟는플래쉬.하늘을가르는레이저
위에서내려가고밑에서올라오고위에서내려가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
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별
M76의아령은M27의아령에흡사하다(나는부정한후에부정하는나)
사각이난땅콩이우둘대기시작이다(놀라움이끼치는일이다)
오리온벨트근방에서승천하는궤적
하늘은어둠.찬란한별들의군집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