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STAR TALES

STAR TALES 연재 완료 후기 : 별자리는 운세가 아닙니다.

다락방별지기 2025. 3. 18. 14:32

1. 별자리 여정의 시작

 

저는 밤하늘을 통째로 보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장비 중 화각이 가장 넓은 초광각렌즈를 사용하여 밤하늘을 즐기곤 합니다.

바로 제 눈이죠.

 

두께가 40센티도 넘는 코스트코 자충 매트를 펼쳐놓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펼쳐놓은 망원경은 파수꾼 역할에 만족할 때도 가끔 있습니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하늘의 모습은 전혀 심심하지 않습니다.

그 하늘에 별똥별도 무수히 내립니다.

구태여 유성우를 쫓아다닐 필요도 없죠.

 

그리고 그 하늘의 별들을 이어봅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별들을 내 생각대로 이어보는 겁니다.

의외로 제법 많은 경우 무작위로 향하는 선이 익히 알려진 별자리 선을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건 이미 알려진 별자리 선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을 바라봤을 고대인들도 분명 지금의 나와 같은 선을 그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죠.

 

작은곰, 큰곰, 카시오페이아, 케페우스, 페르세우스, 오리온, 황소, 전갈, 땅꾼 등.

밤하늘에서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거대한 별자리들이 하나같이 그렇습니다.

세세한 모든 것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대충 비슷한 양상을 그렸을 겁니다. 

 

그건 별자리의 역사가 사람과 함께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음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이야기를 입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세대를 거치면서 전해지고, 변화에 변화를 계속했겠죠.

 

안타깝게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수많은 이야기는 대부분 사라졌고, 딱 하나 고대 그리스의 만담꾼들이 만들어놓은 장난 같은 이야기들이 살아남았습니다.

 

제 별자리 여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2. 주춧돌이 필요하겠다.

 

별자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꽂이에 별자리 관련 책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별자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이상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별자리를 이야기하는 책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읽을만한 책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별자리를 설명하는 책은 대개 어린이와 어른이를 대상으로 '~이랬답니다.'라는 수준의 책이었습니다.

그런 책으로는 도무지 별자리에 대한 궁금증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천문해석학'이라는 분야의 책을 만났습니다.

 

천문해석학!

그래, 이거야말로 내가 찾던 책이야!

하늘을 해석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관점을 담은 이야기겠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어처구니없게도 점성술 책이었습니다.

 

결국 별자리 탐구를 위한 여정은 한글이 아닌 다른 텍스트를 뒤져봐야 하는 단계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별자리를 공부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말입니다.

 

별자리를 공부하려면 일단 영어를 알아야 했고, 라틴어 사전을 뒤질 줄 알아야 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자 헬라어를 쓰거나 읽는 거 정도는 해야 했습니다.

이 정도 단계에 들어서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별자리 뒤에 뭔가 다른 정체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헬라어 옆에는 아라비아어가 버티고 있습니다.

아직도 컴퓨터에서 커서 드래그를 할 때,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는 것조차도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아라비아어에 좀 더 익숙해진다면 하나의 조상에서 둘로 갈라져 나온 별자리 이야기의 나머지 한 축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추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수렴되는 지점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나타났습니다.

 

다행히 신화를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별자리 여정에서 잠깐 옆으로 샌 한 2년 동안은 수메르 신화에 진탕 빠진 시기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프톨레마이오스를 주춧돌로 해서 고대 그리스의 별자리 이야기라도 제대로 알아야겠다.

 

비록 습작 수준의 그리스 별자리 신화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일단 이 부분을 제대로 단도리 해 놓아야 그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단단한 받침대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의 천문 작가 이안 리드패스(Ian Ridpath)Star Tales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건 바로 이때였습니다.

 

3. 깐깐한 영국 할배.

 

Star Tales의 번역이 완료된 건 202029일이었습니다.

비록 이 번역 작업에만 몰두했던 건 아니지만 번역 시작을 201645일부터 했으니 꼬박 4년이 걸렸네요.

하지만 이렇게 번역된 글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50곳이 넘는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 책을 출판해 주겠다고 나서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출판이 되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뻔했죠.

 

별자리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아이가 읽을 책인데, 아이는커녕 어른이 읽기에도 내용이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래서야 어디 책이 팔리겠어요?

가뜩이나 불황에 허우적거리는 출판계가 출판을 해줄 리 만무했죠.

 

Star Tales를 번역하면서 늘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번역 선례가 없는 단어가 많다 보니 우리나라의 지적 역량이 빈약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얼마나 많은 '명사'의 수를 가지고 있느냐가 그 언어의 문화적, 지적 역량의 척도가 될 텐데 한글은 거기서 한창 뒤지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를 만나지 못하면서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번역을 했겠지.

누군가에게는 숨겨진 지적 자산이 있겠지.

다만 그게 세상의 빛을 못 보는 거지.

시장 상황상.

문화적, 지적 역량이 풍부해지는 걸 방해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시장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출판을 할 수 없어도, 번역료나 인세를 포기한다면, 온라인만으로 어떤 정보든 나눌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번역이 완료된 Star Tales를 온라인 상에 오픈하기로 마음먹고 저자인 리드패스 할배에게 허락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때가 20207월이었네요.

리드패스 할배로부터 답이 온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 원하는대로 해. 그런데 아마 내 변호사가 연락하게 될 거야."

 

뭐지? 이 기분 나쁜 문장은?

안되면 안 된다고 하지.

이게 뭐야?

지금 장난해?

 

 

솔직히 리드패스 할배의 글을 번역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았습니다.

리드패스 할배의 글은 별자리 지식의 '기초 중의 기초'라는 측면에서는 유용했지만, 문장이 대체로 장황하여 정리에 애를 먹을 때가 많았죠.

 

하지만 뭣보다 맘에 안 드는 건 문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서양인 꼰대 특유의 유럽우월주의였습니다.

순전히 기록과 이야기 덕분에 별자리는 어느덧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되어 있었고, 그 문화의 후계자라는 유럽의 문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자리는 유럽의 문화가 아닙니다.

이러한 심리적 반발 중 하나로 Star Tales에 등장하는 중국 별자리 이야기는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중국 별자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기분 나쁘고, 그 별자리를 48개라는 고대 그리스의 별자리 경계를 기준틀로 분석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결국 Star Tales는 출판은 물론 인터넷에 공유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네요.

 

지난해 여름.

주위에 나이 차가 얼마 안 되는 선배님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생기고, 제 나이 또래 친구들도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들리곤 했습니다.

나이가 드니 철이 들기 시작하네요.

그 철은 이젠 나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USB에 잠들어 있는 글을 빨리 내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생각에 우선 연락처가 확실한 리드패스 할배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습니다.

 

5년 전엔 안 된다고 했는데, 혹시 생각이 바뀌었는지

바뀌었다면 당신 글을 한국 친구들한테 공유하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다시 요청 메일을 보냈죠.

 

그리고 드디어 받았습니다.

허락한다는 메일을 말입니다.

 

5년 사이 뭐가 바뀐 걸까요?

(좀 늦었긴 하지만) 리드패스 할배도 분명 나처럼 철이 들었을 겁니다

 

4. 별자리는 운세가 아닙니다.

 

Star Tales 연재는 그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별자리 이야기라면 으레 말랑말랑할 거라고 생각하는 선입견과 달리 실제 별자리 이야기는 아주 무겁습니다.

여기 연재된 Star Tales는 그 무거운 글 중 그나마 가장 가벼운 글이고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시면 그게 그럴 수밖에 없잖습니까?

 

별자리 이야기야말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이야기입니다.

별자리에는 과학은 물론, 역사학, 고고학, 신학, 언어학, 민속학, 심리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 별자리 이야기가 대개 잠깐 밤하늘 아래에서사실은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격이 한참 떨어지는 사람들이 습작으로 끄적여 놓은 수준의 이야기를 가져와 마치 별자리 이야기의 전부인 양 언급되고 마는 게 오늘날 별자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마치 밤하늘 전체에서 별 하나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처럼 별자리 전체 이야기에서 극히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 99일부터 140편으로 포스팅된 Star Tales 연재 역시 전체 별자리 이야기 중 극히 작은 한 부분에 점 하나 더 찍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별자리라는 거대한 영역을 들어서기 위한 문 하나의 역할은 충분히 한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의도한 효과가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별자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별자리 이야기는 점성술 이야기입니다.

 

별자리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유일한 부가가치가 점성술인 상황에서 소금을 뿌려서 미안하긴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별자리는 운세가 아닙니다.

 

별자리는 역사학, 고고학, 신학, 언어학, 문학, 민속학, 심리학, 과학이 망라된 인간 역사의 한 줄기입니다.

 

이런 별자리에 접근하는 올바른 통로 하나 만들어놓고 싶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무수히 등장하는 점성술 사이트 사이사이에 말입니다.

 

모쪼록 별자리가 그 역사와 무게에 걸맞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날이 오기를,

어마어마한 학문적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이 영역에 누군가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 결심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Star Tales의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3월 18일. 다락방별지기 이강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