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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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순수했던 시절 - 독일인의 사랑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하게 읽어볼 책을 고르기 위해 책꽂이를 살펴보았다.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 바로 옆에 꽂혀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 번을 읽고도 여전히 그 의미가 파악이 안 되는 책이다. 때마침 그 책 옆에 꽂혀 있는데다가 두께도 엇비슷하고 무엇보다 달달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 말 그대로 휴식에 충실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꺼내보았다. 이 책은 기대대로 충실한 휴식을 안겨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만으로 온 세상이 충만하던 시절, 가슴 한가운데 설레임이 가득하던 시절의 기억도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땐 그랬지. 물론 사랑하는 여인이 불치병으로 죽어버리는 건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부활전야미사만큼이나 길고, 복잡하고, 거룩한 밀당들은 있었지. 독일인이라는 것..
2022.03.12 -
역사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별자리의 기원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이었다. 별자리가 탄생한 곳으로 평가받는 수메르 문명부터 페르시아 문명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동 지역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고대국가들의 문명사는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별자리와 관련된 직간접적 단서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특히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주요 동기 중 하나인 바빌로니아 부분은 전체 분량에 비해 너무나 짧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의 주요 테마는 고대제국 페르시아와 주변국가들 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비록 별자리에 대한 간접적 자료들을 많이 찾아내진 못했지만 실망은 전혀 없었다. 원형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값진 생각거리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
2022.02.13 -
하늘이, 하나가 보고 싶었다. - 환상의 마로나
2022년 새해 첫 날. 오늘은 맛있는 걸 먹으며 철저하게 쉬기로 했다. 소파에 늘어져 있다가 휴식에 걸맞는 애니메이션을 보기로 했다. 유플러스 TV의 무료 애니메이션을 검색하다가 인상적인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이 보석과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나게 됐다. 제목은 '환상의 마로나(Marona's Fantastic Tale, 2019)'이다. 작화가 너무나 아름다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컷 한 컷, 장면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을 보는 듯 했다. 스토리는 로드킬을 당한 강아지 마로나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눈을 감는 순간 마로나의 생애가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지나간다. 바로 그 한 편의 영화가 이 작품이다. 이 강아지는 아홉 마리 새끼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주인에 의해 너프라고 불렸다. 너프(ne..
2022.01.01 -
제주를 떠나 보내다.
장어머니의 항암 비용을 대기 위해 제주 땅을 급매로 내놓았다. 그러나 장어머니께서는 그 항암 치료를 한 번 밖에 하지 못하셨고, 끝내 회복을 못하신 채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내가 장어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 장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셨었다. 되돌아보니 시간이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버리는 것 같다. 올해 장어머니를 비롯해서 산청 채울집 생활을 함께 한 하늘이, 하나가 모두 내 곁을 떠나갔다. 문득 나도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주 땅 급매를 걷어들이지 않았다. 그 땅은 지난 15년 동안 심정적으로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삶이 고될 때마다 내겐 피난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고마운 땅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여자분이 그 땅의 새 ..
2021.12.18 -
선물
작은 선물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시작도 쉽지 않았고, 마무리까지 쉽지 않은 2021년. 내년에는 보다 멋진 일들이 가득하기를.
2021.12.18 -
제게 맡기신 이 천사의 영혼을 돌려드립니다.
2021년 10월 11일 이른아침. 사랑하는 하늘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하늘이는 이첨판 폐쇄 부전증이라는 심장병과 다엽성 뼈종양이라는 악성 종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몸이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심장병의 특성상 밤에 잘 때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어야 했습니다. 다리에 더 이상 힘이 없어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하늘이가 뒤척일때마다 자세를 바꿔주었고 배변여부를 확인하여 그때마다 자리의 패드를 바꿔주고 몸을 닦아 불편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썼습니다. 매일 밤을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이 날도 새벽까지 하늘이의 자세를 바꿔주고 똥오줌을 치우고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4시경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 6시에 잠시 잠에서 깼..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