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열두 달.

2022. 10. 19. 23:121. 별과 하늘의 이야기/별지기 사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열두 달을 담고 있는 내용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천 년 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그 순서에 대한 갈피를 잡기는 어렵다. 

또한 당시 주요 도시는 저마다의 달력을 사용했기에 기록의 일관성도 확보되지 않는다. 

 

이러한 혼란은 기원전 3천년대 말에 정리되었다. 

이때부터 제국 단위의 단일 달력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달력은 니푸르의 달력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니푸르는 고대 수메르 도시국가 중 최고신 엔릴을 섬기는 종교적 중심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니푸르가 필경사들의 중심 도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니푸르에서 사용되던 열두 달의 명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표준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2천여년 간 영향을 미쳤다. 

 

각 열두 달의 표기와 이름, 천문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티(ITI) : '월(月)'을 의미한다.

 

우선 수메르에서는 '월'을 '이티(ITI)'라 하였다. 

쐐기문자에서 '이티'는 두 개의 산 사이에 떠오르는 태양을 기본 형상으로 하여 그 가운데 10을 의미하는 표기 3개를 넣은 것이다.

즉, 수메르에서 한 달은 30일이었던 것이다. 

한 달 30일에 열두 달은 360일로 양력상의 1년과 5일의 차이를 만든다. 

이러한 차이는 수메르를 비롯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국가들이 태음태양력을 사용한 이유가 되었다. 

 

첫 번째 달(오늘날의 3~4월) : 이티-바르-자-가르(ITI-BAR₂-ZA₃-GAR) 

쐐기문자 표기에서는 해당 월의 전체 이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문자만 기록하였다. 

즉, 이 표기는 '이티 바르(ITI BAR)'라 읽는다. 

 

수메르 쐐기문자에는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표기에 아라비아 숫자를 넣어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에 따르면 '이티 바르₂ 자₃ 가르(ITI-BAR-ZA-GAR)'로 기록한다. 

수메르의 뒤를 이은 패권국가인 아카드에서는 '니산누(Nisannu)'로 읽었다. 

 

수메르의 첫 번째달은 오늘날의 1월이 아닌 3월 ~ 4월이다. 

이는 춘분점을 기준으로 초승달이 뜨는 가장 가까운 날이 1년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티 바르 자 가르'는 '성소에 있는 왕좌의 달(The Throne of the Sanctuary)'로 해석될 수 있다. 

 

이티-바르-자-가르는 매우 중요한 달이다. 

 

최고신 '안'과 안의 아들이자 메소포타미아 만신전의 최고신인 '엔릴'에게 바쳐진 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 도시의 수호신이 복귀하고 그 권한이 신의 충직한 부하인 왕에게 부여되며 이를 기념하는 아키투(Akitu) 축제가  열렸다.

아키투 축제에서는 도시의 수호신이 귀환하여 온 땅을 지배하는 의식을 재현했다.

각 신전에서 신상을 들고 나와 도시의 성곽 바깥에 있는 아키투(Akitu) 집으로 옮겼고 이를 다시 원래 신전으로 되돌려 놓으며 온 도시민들이 이를 환영하는 의식을 행했다.

 

첫 번째 달의 표기 '바르(BAR)'는 높은 단 위에 있는 왕좌를 형상화한 것으로 대개 종교적으로 활용되는 단상, 재단, 성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달(4~5월) : 이티-구-시-수(ITI-GU₄-SI-SU)

이티 구(ITI GU)라 읽는다.

'뿔달린 황소들이 앞으로 전진하는 달(The Horned Oxen march forth)'이라는 뜻이며 아카드어로는 '아자루(Ajjaru)'이다. 

오늘날의 4월 ~ 5월이다. 

 

이 달에 농촌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농기구를 다듬고 관개수로를 고치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달의 이름은 줄 지어선 소떼의 형상 등, 농경 축제에서 볼 수 있는 형상을 본 떴다. 

농경 축제란 닌기르수 신에게 봉헌된 축제이다. 닌기르수는 엔릴의 아들이자 전쟁의 신인 '닌우르타'가 지역화 된 신이다. 닌기르수는 농경과 전사의 이미지가 합쳐진 신성을 가지고 있다.

 

황소의 머리를 그린 표기인 '구(GU₄)'는 형상 그대로 황소를 표기하는데 사용된다.

또한 이 표기는  은유적으로 '호전적인, 영웅, 전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 번째 달(5~6월) : 이티-시그-가(ITI-SIG₄-GA)

이티 시그(ITI SIG)라 읽는다

'벽돌 틀을 만드는 달(The Brick-mould)'이라는 뜻이며 아카드어로는 '시마누(Simanu)'이다.

오늘날의 5월  ~ 6월이다. 
시그(SIG)표기는 진흙 벽돌로 지은 담장의 한 부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진흙 벽돌', '벽돌 쌓기', '블럭' 등의 의미로 쓰이며 뜻이 확장되어 '진흙 벽도로 만든 건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달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건조한 기후에 뜨거워 지는 햇살 탓에 목조 주형틀에서 빚어낸 진흙 벽돌을 햇볕에 내놓아 단단히 말리기 시작한다. 품질이 우수한 벽돌은 햇볕에 말린 벽돌을 가마에서 구워냄으로써 만들어졌다. 벽돌을 구워내는 가마를 축복하는 의식들이 여러 점토판 기록에 남아 있다. 

 
네 번째 달(6~7월) : 이티-슈-누문-나(ITI-ŠU-NUMUN-NA)

 

이티 슈(ITI-ŠU)라 읽는다.

씨뿌리는 달(The Casting of Seed)’이라는 뜻이며 아카드어로는 '두무지(Dumuzi)'이다. 

(Šu)는 남자의 손을 상징하며 가장 단순한 의미는 또는 짐승의 발’이다. 또한 이 표기는 어떤 대상을 지배하여 조종하는 의미를 다루는 여러 상황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 달은 두무지 축제가 열리는 달이다.
두무지가 저승 악마에게 납치되었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 두무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소리가 울려퍼진다. 
또한 이달에는 하지가 있어 바빌로니아에서는 하지를 기념하는 의식이 열렸다.
우선 낮의 신전인 에삭일라(Esagila)에 있는 여사제들이 밤의 신전인 (Ezida)로 이동한다.  하지가 밤이 가장 짧은 날이기 때문인데 여사제의 이동은 짧아진 밤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동지에는 여사제들이 에삭일라로 돌아왔다.  반대로 낮의 길이를 늘리기 위한 의식이다. 

 

 

다섯 번째 달(7~8월) : 이티-네-네-가르(ITI-NE-NE-GAR)

 
 이티-네(ITI-NE)라 읽는다.

'금속 화로의 달(The Braziers)'이라는 뜻이며 아카드어로는 '아부(Abu)'이다.

(NE)’ 기호는 금속화로를 의미한다.  이 표기는 화로, 횃불, 불빛, 불꽃, 화염, 불과 관련된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부차적으로 굽다, 태우다, 뜨겁게 데우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다섯 번째 달에는 조상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이때 죽은 선조들의 영혼이 이승으로 돌아와 후손들의 식탁에 함께 자리한다고 한다. 
축제에서 횃불과 화로에 불을 붙이는 이유는 길을 밝혀 선조들의 영혼이 집에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달에는 마크루(maqlu)라는 구마의식이 열리는데 이는 조상들의 영혼에 섞여 올지도 모를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이다. 
 
 
 
 

여섯 번째 달(8~9월) : 이티-킨-인닌-나 (ITI-KIN- ͩ INNIN-NA)

이티-킨(ITI-KIN)이라 읽는다. 

FULL-NAME에서 인닌(INNIN)앞에 위첨자처럼 붙어 있는 'd'는 수메르어로 신을 의미하는 'Dingir'의 첫글자를 딴 것이다. 

여신들이 일하는 달(The Work of the Goddesses)’이라는 뜻이며 아카드어로는 '울루루(Ululu)'라 한다. 

 

여섯 번째 달은 여러 여신에게 바쳐진 달이다.

이달에 하늘에 수메르 만신전에 속하는 여신들의 별자리가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 이때는 여신들의 신상을 깨끗이 씻어내고 축성하는 의식이 행해진다는 기록이 있다. 

 

 

일곱 번째 달(9~10월) : 이티-두-쿠(ITI-DU6-KU₃)

이티-두(ITI-DU6)라 읽는다. 

‘신성한 언덕의 달(The sacred Mound)’이라는 뜻이며 아카드어로는 '타쉬리투(Tašritu)'라 한다. 

 

(DU)는 언덕을 추상화한 것이다.

표기는 '패물들이 쌓여 있는 것' 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낟알이 쌓여 있는 더미'라는 의미도 있고, 

부차적으로는 고도’, ‘낮은 산’, ‘등산’, ‘숨기기’, ‘덮어버리기등의 뜻도 있다. 

 

신성한 언덕은 소떼와 곡식이 잉태되고,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예술과 공예품이 처음으로 구현된 신화 상의 원천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다른 견해로 ‘지구 내부의 씨앗’을 상징하는 '회반죽을 뒤집어 쓴 곡식 더미'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추정하기도 한다. 

이 언덕은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를 숨기고 있으며 엔릴의 조상들이 머무르는 장소로 간주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달 27일째와 28일째 되는 날에는 엔릴의 조상들에게 봉헌되는 특별한 예식이 행해지기도 한다.

 

 

여덟 번째 달(10~11월) : 이티-아핀-두-아(ITI-APIN-DU8-A)

이티-아핀(ITI-APIN)이라 읽으며 쟁기가 풀려나는 달(The Release of the Plough)’이라는 뜻이다.

아카드 어로는 '아라흐삼나(Arahsamna)'라 한다.

 

아핀(APIN)’은 씨 뿌릴 때 쓰는 쟁기를 의미한다. 

 

여덟 번째 달은 수메르 경제의 근간인 보리를 파종하는 때이다.

농부들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쟁기를 꺼내 사용한다.

한 해 내내 사용되는 괭이와 달리 쟁기는 이달에서부터 약 3개월 동안만 사용된다.

'쟁기가 풀려난다'는 것은 헛간 서까래에 매달려 있던 쟁기가 이때 비로서 밖으로 나온다는 의미이다. 

 

 

아홉 번째 달 (11~12월) : 이티-간-간-나(ITI-GAN-GAN-NA)

이티-간(ITI-GAN)이라 읽으며 구름의 달(The Clouds)’이라는 뜻이다. 

아카드 어로는 '키스리무(Kislimu)'라 한다.

 

(GAN)표기는 선반 위에 놓인 큰 저장용 항아리를 형상화 한 것이다.

이 표기는 (He)라고도 읽을 수 있는데, 수메르어 헤갈(He-gal)풍요를 의미한다. 

 

이달의 이름은 겨울에 비를 뿌리는 구름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왕조 문서에 등장하는 이달에 대한 설명은 확실히 천둥의 신 아다드(Adad) 및 이쉬쿠르(Iškur)와 연계되어 있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이 달에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열린 걷기 대회를 언급하고 있다.

아시리아의 자료들에서 보이는 걷기 대회는 닌우르타가 안주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열렸다고 한다.

 

 

열 번째 달(12~1월) : 이티-아브-바-에(ITI-AB-BA-E₃)

이티-아브(ITI-AB)라 읽는다.

떠오르는 성전의 달(The shrine of arising)’이라는 뜻이며 아카드 어로는 '테부투(Tebutu)'이다. 

 

아브(AB)표기는 언덕 위에 세운 성전을 형상화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 표기는 거룩한 성소의 경계 또는 성전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원래 니푸르의 달력은 이 달을 곡식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하지만 이 이름은 우르3왕조의 죽은 왕들에게 봉헌되는 의식으로 대치되어 웅장하게 떠오르는 성전을 의미하는 아브(Ab-e)가 되었다.  ‘아브(Ab)는 지하세계로 접어드는 입구를 막고 있는 거룩한 언덕을 의미한다.

 

 

열한 번째 달(1~2월) : 이티-지즈-아-안(ITI-ZIZ₂-A-AN)

이티-지즈(ITI-ZIZ₂)라 읽으며 에머밀 축제의 달(The Festival of Emmer-Wheat)’을 뜻한다.

아카드 어로는 '샤바투(Šabatu)'이다. 

 

지즈(ZIZ)’ 표기의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용법으로 판단해 보건대, 아마도 에머밀 한 다발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표기는 동사로 저주하다’, 또는 모욕하다로 쓰일 수도 있다.

 

열한 번째 달의 상징에 대해서는 이 표기가 에머밀을 언급하는 것 같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아마도 이러한 표기는 재해나 질병으로부터 자라나는 곡물을 보호하기 위한 농경축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열두 번째 달(2~3월) : 이티-셰-킨-쿠(ITI-ŠE-KIN-KU)

이티-셰(ITI-ŠE)라 읽으며 보리 수확의 달(The Barley Harvest)’이라는 뜻이다. 

아카드 어로는 '아다루(Addaru)'라 한다. 

 

‘셰(ŠE)’는 보리줄기를 형상화한 표기이다.

이 표기는 '곡식'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특정 작물로는 '보리'를 지칭한다. 

이 표기는 또한 모든 종류의 곡식 이름 앞에 한정사로 사용될 수도 있고, 측정 단위로 사용될 수도 있다.

 

열두 번째 달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보리를 수확하는 달'이다.

보리 수확이 비록 세 번째 달에 속하는 5월에 주로 이뤄지긴 하지만 그 해의 첫 수확은 열두 번째 달의 끝에 시작된다. 

그해의 맏배를 수확하는 중요한 달이기 때문에 이달에 '보리를 수확하는 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달에는 곡식의 여신인 아쉬난(Ašnan)이 아름다운 처녀로 밭에 나타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