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해? - 영화 거인

2024. 2. 20. 11:034. 끄저기/끄저기

영화 <거인>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타임라인에 올려준 영화야 

아마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 같은 영화에 더블 엄지를 날려준 영향인 것 같아. 

 

영화 소개문부터 끌렸어.

'고아', '보호시설' 이라는 단어가 단숨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어. 

 

바로 플레이를 눌렀지.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주의깊게 봤어. 

 

이제는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 배우가 된 최우식 배우가 2014년에 찍은 영화야.

봉준호 감독이 최우식 배우의 이미지가 요즘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던 것 같아. 

 

유약하기 때문에 손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그런 이미지랄까?

 

그런 최우식 배우의 2014년 버전인데, 여기서도 이미지가 아주 잘 맞았던 것 같아. 

 

나는 사실 이런 류의 바닥 리얼리즘 영화를 잘 못 봐. 

가장 큰 이유는 난무하는 폭력과 욕설을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야. 

 

그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감독이 극단적인 폭력과 욕설을 리얼리즘의 이름표라고 착각한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건 폭력과 욕설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견고한 원흉이 있거든. 

진정한 바닥 리얼리즘은 그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난무하는 폭력 따위가 아닌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이나 사회구조적 결함을 말이야. 

 

이 영화가 딱 그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 

 

극단적이지도 않고, 노골적이지도 않고, 폭력적이지도 않고,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으면서 

가슴을 쥐어짜는 현실의 그늘을 제대로, 그것도 깊이있게 드러내 주었던 것 같아. 

 

이 영화에서 내 가슴을 치고 들어온 대사는 이거였어. 

 

"아니, 왜 그렇게 책임을 안 지려고 그래?" 

 

보호시설에 맡겨진 영재(최우식 분)가 자기 동생까지 보호시설에 맡기려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야.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던 것 같아. 

어제 영화를 봤는데 아직도 마음에 저 대사가 꽂혀 있어. 

 

그래서 계속 나에게 반문하고 있어. 

 

"나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라고 말이야. 

 

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영화를 보고서, 그리고 지금도 부끄러움과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