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별자리 이야기/BABYLONIAN STAR LORE

바빌로니아 별자리와 천문전승 - 별자리 개관 6. 추분 이후 별자리

다락방별지기 2025. 5. 20. 11:41

추분이 지나면 밤이 낮보다 길어집니다. 

즉, 어둠이 빛에 승리하는 시기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태양은 물론 죽음을 맞은 신들은 하계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망자의 영혼은 선조의 왕국으로 이어진 기나긴 길을 따라 여정을 떠납니다.  

이 엄숙한 시기를 구성하는 별자리는 '저승으로 하강'이라는 주제에 걸맞는 형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뱀 몸통을 가진 저승의 수호자는 망자의 영혼을 별자리 사이에 위치한 최후의 안식처로 안내합니다. 

 

그림 1 : 별달력의 다섯 번째 부분 - 추분 이후 태양이 머무는 별자리 

 

가을의 태양은 거대한 전갈자리(the Scorpion)가 장악합니다.

무시무시한 무기를 갖춘 전갈은 전쟁과 왕의 호전적 역량을 상징화한 창조물로 간주됩니다. 

전갈은 독을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성은 죽음과 저승으로의 하강이라는 가을의 주제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주제가 전갈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의 속성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별은 리시(Lisi)라는 여신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이름은 죽음을 애도하여 곡을 하는 여러 여신을 부르는 통칭으로도 사용됩니다.

 

별달력에서 전갈자리가 갖는 신화적 속성은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태양의 문을 지키는 한 쌍의 전갈인간이 등장합니다.

태양의 문은 지하세계로 이어지는 터널의 시발점으로서 매일 밤마다 태양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길가메시는 이 문을 통과하여 세상의 경계 너머에 있는 불멸의 존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갑니다. 

 

이 터널은, '별자리 사이를 일 년 동안 일주하는 태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가을에 지하세계의 어둠 속으로 고도를 낮춰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칭자리(the Scales)는 전갈의 두 개 집게발에서 유래한 별자리로서 태양신 슈마쉬(Šumaš)에게 바쳐진 별자리입니다.

천칭자리는 우선 추분을 상징합니다.

이때 낮과 밤의 길이는 같아지고 태양은 정동에서 떠올라 정서에서 집니다.

천칭자리의 두 번째 상징은 '정의로운 심판'입니다.

'증거의 무게를 잰다'라는 문구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천칭은 태양의 신에게 특히 적합한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바빌로니아 만신전에서 슈마쉬의 주요 임무가 '진실과 정의의 중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천칭자리는 바빌로니아 점성술에서 태양의 특별한 거처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바빌로니아 점성술사들은 이 지점을 플레이아데스에 있는 달집에 정반대되는 위치로 설정하였습니다.

 

뱀의 몸통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상은 앉아있는 신자리(the Sitting God)우뚝 선 신자리(the Standing God)로 불립니다. 

이 별자리에 좌정한 신은 엔릴의 조상입니다. 

이들은 신성한 언덕자리(the Sacred Mound)에 살았습니다.  

그 언덕은 지하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덮은 무덤이자 동시에 풍요로운 대지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문서에서 이들은 망자의 영혼을 돌아올 수 없는 땅으로 안내하는 신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자료에서는 망자의 심판자이자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앉아있는 신자리는 오늘날 땅꾼자리에 위치한 별자리였으며 우뚝 선 신자리 북쪽왕관자리헤르쿨레스자리의 일부를 차지하던 별자리였습니다. 

신성한 언덕자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별자리인 마이날로스산자리의 원형이 된 별자리입니다. 

 

앉아있는 신자리 바로 뒤로 자바바(Zababa)신이 등장하는 자바바의 별자리(the Star of Zababa)가 있습니다.

이 신은 전사의 신이며 독수리의 상징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고대의 신입니다.

자바바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보니 이 별자리는 추정 외에는 명확하게 제시할 것이 없습니다.

 

험악한 개자리(the Mad Dog)는 인간과 사자가 합쳐진 독특한 형상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이 별자리가 원래 비손자리(the Bison-man, 황소인간)과 짝을 이루던 고대 형상의 유물이라 생각합니다.

이 두 개 별자리가 오늘날 별자리인 이리자리켄타우루스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죠. 

험악한 개자리의 형상은 비손과 함께 '사자와 황소의 투쟁'이라는 그림을 구성합니다. 

두 신의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절 간의 투쟁을 상징합니다.

즉, 가뭄을 야기하는 여름의 상징으로서의 사자와 황소로 상징되는 비내리는 계절, 겨울의 지속적인 투쟁을 담아낸 것입니다. 

 

가을의 하늘에서는 비손이 여름의 사자를 이기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비손의 승리는 우기의 도래를 환영하는 상징이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손자리는 사라졌고, 짝을 잃은 외로운 유물로서 험악한 개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번역자 주석
1. 이 글은 천문작가 Gavin White의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별자리와 천문전승을 담은 에세이집 Babylonian Star Lore (ISBN-13 : 978-0955903748)를 번역한 것입니다. 
2.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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