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끄저기(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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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찾아서 : 제대로 된 상상
친구가 보내온 메일에 제목이 언급되어 본 영화이다. 워낙 오래 전 영화(1981)라 어디 있을까 하고 찾다보니 유튜브에 있었고 자막이 없는데 괜찮을까 하며 봤는데 자막이 필요없는 영화였다. 과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난 과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사고 놀이에 빠지곤 한다. 예를 들어 내가 1천 년 전을 상상한다면 과연 얼마나 지금의 영향에서 벗어난 순수한 1천 년 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연습을 통해 나를 사로잡고 있을지 모를 편견과 선입견을 점검해 본다. 대학교 2학년 때 단군신화를 페미니즘으로 분석한 평론을 접했을 때 지금의 판단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한 이렇게 쓰레기 같은 글이 어떻게 첫 번째 수업에 다뤄질 수 있냐고 교수에게 대든 이후 더더욱 그런 연습..
2023.03.19 -
글인연 -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최근에 든 생각이 있다. "글은 쓰는 사람의 인연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와 비슷한 말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책이 읽을 사람을 알아서 찾아간다." 어떻게 말을 하든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게 돼서, 기나긴 인연의 시간을 지나 이 책이 내게 찾아와 주어 감사드릴 따름이다.
2023.02.20 -
생명의 기적
지난 12월 중순 동네 신협에 들렀다 나오는데 안쥔마님께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웠다. 그리곤 순전히 이쁘다는 이유 하나로 때마침 집에 남은 시럽통 하나를 깨끗이 씻어 물을 담고는 그 나뭇가지를 담궈 놓았다. 나는 간혹 청소를 하면서 신기해 했다. 희한하게도 시드는 느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은 직접 물을 갈아 주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날 아침.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얘가 꽃을 피운 것이다! 사실 오며 가며 관심을 두지 않아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놀라움이 더더욱 컸다. 그제서야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얘 이름도 몰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랴부랴 구글렌즈를 깔아 검색하고 네이버 이미지 검색 등 할 건 다 해봤는데 딱히 정확한 이름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좀 비슷한..
2023.02.17 -
일상누적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설거지를 하고 옷을 정리하고 이불을 탈탈 털어 접었다. 이불 중 깔개 하나는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접어 넣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주교 영향을 받고 자라서 나는 지금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트리를 세우고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예수봉헌대축일 즈음에 트리를 걷는다. 20여 년 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를 담아온 종이 박스는 온통 너덜거리는 몸통에 청테이프와 비닐 테이프를 가득 감고 있다. 새로운 비닐 테이프를 촘촘히 감아 일년 더 버틸 임무를 주었다. 물티슈로 탁자, 책장, 싱크대, 문, 전기 스위치 등 먼지가 앉을 만한 곳을 닦아내고 현과문과 창문을 활짝 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고무장갑을 끼고 세면대와 변기, 화장실 바닥과 낮은 벽에 락스를 뿌려 닦아냈다. 바닥을 차지하..
2023.02.05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남자가 가족의 우두머리고 아내들은 그에 복종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맞는 말이다. 자식은 아버지와 그 가족에게 속하지, 어머니와 그 가족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은네카, '어머니는 가장 위대하시다'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자식이 아버지에게 속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면, 자식은 어머니 집으로 피하지. 모든 일이 무사하고 삶이 달콤할 때 사람은 아버지의 땅에 속한다.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어머니의 땅에서 위안을 찾는다. 어머니는 이럴 때 너를 보호한다. 이것이 어머니가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가 되고자 했지만 아버지가 되지 못한 이의 이야기이다. 밋밋한 서사에 삶의 진수까지 들어가겠다..
2023.01.31 -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막상 어른이 되니 술마시고 담배 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2023.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