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끄저기(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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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일 하기
전형적인 소시민인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눈앞에 닥친 일 하기'이다. 한때는 원대한 꿈을 꾸고 그래서 이상을 부르짖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어느 순간 계획도 세우지 않게 됐다. 계획이라는 건 내가 변수를 통제할 수 있을 때 세우는 거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없는데 무슨 계획을 세우겠는가? 그래서 친구의 조언을 받아 정립한 기준이 눈앞에 닥친 일은 하자였다. 일단 너무나 낮기만 한 내 눈에 띠었다는 건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난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 없어, 차를 살 때 하이브리드를 샀다. 트렁크가..
2023.08.27 -
관점을 바로 잡는 굉장한 경험 - 최초의 역사 수메르
1. '수메르 신화'는 나의 지식탐구 여정에 한 축을 차지한다. 신화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조철수 교수님의 책 를 통해 처음 수메르 신화를 접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수메르 신화를 접하고 성경을 비롯한 다른 신화는 다 애들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사로잡는 것은 수메르 신화에서 별자리의 원형이 읽힌다는 것이다. 우르 3왕조 때 만들어진 인장에서 염소자리 그림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나를 압도하고 있다. 그 이후 수메르, 바빌로니아, 메소포타미아와 관련된 책들은 닥치는대로 사 읽었다. 별자리 기원에 대한 단서를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길가메시 서사시에 깊게 빠져들기도 했다. 그 옛날 삶의 본질을 꿰뚫은 위대한 사상과 그 사상을 써 내려간..
2023.08.22 -
불행의 원인은 자신일 뿐 - 폴란드의 풍차
1. 마치 유튜브 타임라인에 내가 선호하는 영상이 주로 뜨듯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도 내 무의식이 작용한다. 그러고보면 '나'라는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도 그닥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도서관에서 무작위로 책을 빌려 보는 것이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뽑아온 책은 '폴란드의 풍차'였다. 무작위 책보기가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책이었는데 아주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를 한 아름 안겨주었다. 2. 2대, 3대에 걸쳐 내려오는 이야기라면 으레 서가 한 켠을 꽉 채우는 토지나 아리랑과 같은 대하소설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무려 5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아주 얇은 책이다. 5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명확하기 때문인데 그 주제란 바로 '저주받은 코스트 가문'이라는 것이다...
2023.08.20 -
나의 이모님들께.
1. 나는 고모님들보다 이모님들과 훨씬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자랐다. 그런데 이게 나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어떤 진화론 책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었다. 이모와 조카는 혈연적 연결관계가 확실히 보장되지만 고모와 조카는 확실하지 않다! ㅋㅋㅋ 그럴듯한 설명이네. 하지만 생식본능이 나의 유전자를 후손을 통해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과학의 탈을 쓴 주문"일 뿐이라고 평가하는 나에게는 이모와 고모의 진화론적 분석 역시 허황되게 들렸다. 2.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고모보다 이모와 친한 데에는 확실하고 단순한 이유가 있는데 고모님들은 항상 잔소리를 주셨지만 이모님들은 항상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친가에 가야 하는 명절 당일이 아니..
2023.08.14 -
얼마나 사무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 - 아버지의 해방일지
"괜히 데모해서 형이나 가족들 힘들게 하지 말아라." 내가 대학에 갈 때 어머니께 들은 얘기 중 하나다. 다행히 나는 김대중 씨와 김영삼 씨의 단일화 실패로 정권을 노태우에게 넘겨줬을 때부터 더 이상 "독재정권 물러가라" 따위를 부르짖을 명분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내가 대학을 갔던 때는 김영삼 정권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내게 데모하지 말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털어봐야 벼룩도 안 나오는 전형적인 소시민 집안이었던 우리 집에서도 저런 말이 나올 정도로 연좌제란 사람의 영혼을 옭아매는 무서운 형벌이었다. 에어컨이 고장난 덕에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이른 새벽까지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낭만을 누리고 있다. 게다가 근래 읽는 책들이 하나하나 너무 좋다. 이 책 는 빨치산을..
2023.07.31 -
한여름의 추억
에어컨이 고장났다. AS센터에 연락하니 한여름 에어컨 고장 신고 폭주로 순서를 기다려 다음주 월요일 오전 9시에 방문 할 거라 한다.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내 전문분야다. 혼쾌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덕에 밤에도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잠이 든다. 이른 새벽까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가 잦아들고 날이 희뿌옇게 밝아올 무렵부터 매미 소리가 지천에 피어난다. 그러고보니 옛날 산청 채울집에 있을 때 생각이 났다. 난 시골은 도시와 달리 여름에도 시원할 거라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산청이 서울보다 한참 남쪽이어서 그랬겠지만 여름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한여름 대낮에는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함께 지내던 하늘이 하나가 더위에는 아랑곳 없이 내 품에 폭 파묻혀 한 낮의 열기를 견뎌냈다..
202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