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507)
-
한여름의 추억
에어컨이 고장났다. AS센터에 연락하니 한여름 에어컨 고장 신고 폭주로 순서를 기다려 다음주 월요일 오전 9시에 방문 할 거라 한다.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내 전문분야다. 혼쾌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덕에 밤에도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잠이 든다. 이른 새벽까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가 잦아들고 날이 희뿌옇게 밝아올 무렵부터 매미 소리가 지천에 피어난다. 그러고보니 옛날 산청 채울집에 있을 때 생각이 났다. 난 시골은 도시와 달리 여름에도 시원할 거라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산청이 서울보다 한참 남쪽이어서 그랬겠지만 여름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한여름 대낮에는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함께 지내던 하늘이 하나가 더위에는 아랑곳 없이 내 품에 폭 파묻혀 한 낮의 열기를 견뎌냈다..
2023.07.29 -
욕망을 풀어내다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4년 전, 칠레 일식여행을 준비하다가 읽었던 책 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역시 좋은 책답게 두 번째 읽으니 또다른 생각할 거리를 내준다. 이 책이 이번에 내게 던진 화두는 '욕망'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욕망은 잘못되고 악한 것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나이를 먹은 지금 아직도 나에게 솔직해 지지 못하고 이런 저런 가식과 치장을 두르고 사는 삶이 아마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것은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리오의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가 살아온데로 살아가는 반면 마리오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대개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 역시..
2023.07.29 -
새로 탄생하는 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다.(Herbig-Haro 46/47)
사진설명 :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서로 촘촘하게 묶인 채 탄생하고 있는 별인 허빅-하로 46/47(Herbig-Haro 46/47)을 고해상도 근적외선 사진으로 담아냈다. 허빅-하로 46/47은 나이가 고작 수천 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어린 별이기 때문에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이 이중별계가 완전히 형성되기까지는 수백만 년이 더 걸릴 것이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고해상도 근적외선을 이용하여 허빅-하로 46/47 (Herbig-Haro 46/47)로 알려진 한 쌍의 별생성 현장을 포착했다. 이 별들은 붉은색 회절선 중심, 밝은 주황색 얼룩 속에 위치하고 있다. 이 별들은 지속적으로 몸집을 늘려가는데 필요한 가스와 먼지 원반 속에 묻혀있다. 이 원반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원반의 그림자는 두 개의 어두운..
2023.07.28 -
행성 탄생의 비밀 - 외뿔소자리 V960 주변에서 관측된 먼지 덩어리
2023년 7월 25일 ESO에서 발표된 사진은 목성정도 크기의 거대한 행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천문학자들은 ESO의 초거대망원경(Very Large Telescope, 이하 VLT)와 아타카마 거대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배열(Atacama Large Millimeter/submillimeter Array, 이하 ALMA)를 이용하여 어린 별 가까이에 있는 대규모 먼지 덩어리를 탐지해냈다.이와 같은 먼지덩어리에서 질량붕괴가 발생하면 거대한 행성이 만들어진다. 이번 관측의 일원이었던 칠레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의 연구원 알리시아 주를로(Alice Zurlo)의 소감은 다음과 같다. "거대한 행성을 보듬어낼 가능성이 있는 어린별 주위의 먼지덩어리가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23.07.26 -
악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착짱죽짱'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착한 짱개는 죽은 짱개'의 줄임말이다. '짱개'란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니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 뿐...그러니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중국인은 죄다 나쁜 중국인'이라는 섬뜩한 뜻을 가진 말이다. 어떻게 이런 말이 온라인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일 수 있을까? 중국인에 대한 강렬한 혐오의 근저에 흐르는 선동과 왜곡은 20세기 초, 유럽에 만연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와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물론 21세기 중국인과 20세기 유대인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혐오의 대상인 중국인이나 유대인이 아니라 그때도 이방인 집단을 혐오하고 지금도 이방인 집단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것이다. 평소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
2023.07.24 -
삶의 정수 - 윤정모 단편소설집 '밤길'
글을 쓰다보면 멋진 글이 나올 수도 있고 식상한 글이 나올 수도 있다. 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글을 쓴다는 거니까. 고등학생 때 성당친구의 권유로 ‘고삐’라는 소설을 통해 윤정모를 만났다. 그때 그 소설을 읽고 마음이 무척 아팠던 기억이 있다.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표지에 이런 글이 있었던 거 같다. “남자는 왜 배설하고 돈을 주고 여자는 왜 몸을 파는 역할을 하는가” 표지의 글이 도발적이었던 만큼 내용 역시 도발적이었다. 내가 당시 이 소설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단순히 책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 우리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중요한 나라가 아니었다. 영등포역 길건너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몸을 파는 누나들이 지나가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잡아 채는 풍경이 일상적이었고 이..
202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