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511)
-
처음 만나는 맛.
코로나 기간동안 저승문턱까지 갔다오긴 했지만, 생판 처음보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몸을 위해, 어느정도 컨디션을 회복하고나서부터는 최대한 잘 차려먹고 있다. 며칠 전에는 안주인마님께서 냉동실에 보관해둔 가자미를 꺼내놓으셨길래, 만 개의 레시피에서 적당한 레시피를 찾아 가자미 조림을 했다.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오늘은 비싼 한우고기를 부위별로 사와 구워 먹었고 저녁에는 굴미역국을 끓여 마른 반찬들과 함께 먹었다. 식탁 위에는 딸기와 포도, 망고를 비롯한 과일이 그득그득하다. 문제는 코로나에 맹폭당한 후 후각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덕에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 후각이 사라지고보니 음식의 간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어떨 때는 묵직한 맛이 느껴지고, 어떨 때는 가벼운 맛이 느껴진다. 각각의 느낌이 어떤..
2022.03.30 -
젤렌스키는 상한가 행진 중.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요즘 상한가 행진 중이다. 어제는 캐나다 의회 연설을 하더니 오늘은 미국 의회 연설을 비롯해 전세계 메이저 언론에 계속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는 젤렌스키가 이런 상황을 의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상황이 젤렌스키에게는 그다지 나쁜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든 그는 전세계적인 정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푸틴이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전쟁을 피하지 못한 젤렌스키의 책임도 그에 못지 않다. 제 나라를 지킬 기본적인 준비도 안 되어 있으면서 NATO 가입 운운하다가 러시아에게 침략의 빌미만 제공했다. 과하지욕. 정치인은 대의를 위해 스스로 비굴해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 나라는 과하지욕을 ..
2022.03.17 -
'꿈틀'대기 - 자전거도둑
대학교 1학년을 중심으로 한 전후 2년, 약 4~5년의 기간은 내겐 암흑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몸뚱이가 굴러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건대 내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었던 시간은 김소진의 소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그의 단편 소설집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무능한 남자.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이다. 그 주제는 당시의 나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졌다. 당시 나는 아마도 김소진의 소설에서 내 모습을 찾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 세상에 무능한 게 나 혼자만도 아니고 이 세상에 추악한 게 나 혼자만도 아니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그리고 군대..
2022.03.15 -
'소설'을 읽다 - 엄마를 부탁해.
이런저런 소설 공모전에서 입상한 소설들을 보다가 느낀게 있다. 요즘은 훅~ 불면 날아가버리는 글을 써야 상을 받는구나! 그렇게 엉뚱한 자신감을 갖고 글을 썼다. 인생이 워낙 천박한지라 글도 그에 못지 않은 천박한 글이 나왔다. 그리고 그 글은 모 스토리공모전에서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상했다. 그럼에도 나는 '최우수'가 아닌 '우수'라는 사실에 좌절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글은 그렇게 쓰는게 아니었다. 내가 쓴 글도 글이 아니고 내게 삐뚤어진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글들도 글이 아니었다. '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글 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신경숙이 괜히 신경숙이 아니구나. 뼈저리게 느낀다. 난 글이..
2022.03.12 -
모두가 순수했던 시절 - 독일인의 사랑
아무 생각 없이 맘 편하게 읽어볼 책을 고르기 위해 책꽂이를 살펴보았다.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 바로 옆에 꽂혀 있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 번을 읽고도 여전히 그 의미가 파악이 안 되는 책이다. 때마침 그 책 옆에 꽂혀 있는데다가 두께도 엇비슷하고 무엇보다 달달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니 말 그대로 휴식에 충실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꺼내보았다. 이 책은 기대대로 충실한 휴식을 안겨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만으로 온 세상이 충만하던 시절, 가슴 한가운데 설레임이 가득하던 시절의 기억도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땐 그랬지. 물론 사랑하는 여인이 불치병으로 죽어버리는 건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부활전야미사만큼이나 길고, 복잡하고, 거룩한 밀당들은 있었지. 독일인이라는 것..
2022.03.12 -
역사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별자리의 기원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이었다. 별자리가 탄생한 곳으로 평가받는 수메르 문명부터 페르시아 문명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동 지역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고대국가들의 문명사는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별자리와 관련된 직간접적 단서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특히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주요 동기 중 하나인 바빌로니아 부분은 전체 분량에 비해 너무나 짧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의 주요 테마는 고대제국 페르시아와 주변국가들 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비록 별자리에 대한 간접적 자료들을 많이 찾아내진 못했지만 실망은 전혀 없었다. 원형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값진 생각거리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