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TALES 2장 - 별지도의 역사 3. 중세 유럽의 별자리 삽화

2024. 9. 29. 22:452. 별자리 이야기/STAR TALES

이전글 : STAR TALES 2장 - 별지도의 역사 2. 아스트롤라베(astrolabe)

 

 

프톨레마이오스의 별자리를 그려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별자리를 종이에 그려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림은 9세기 경, 아라토스와 히기누스의 시를 채색원고로 그려낸 책에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 그려진 삽화는 천문학자가 아닌 예술가에 의해 그려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술가답게 별자리 모습을 새롭게 해석해냈죠. 
그 결과 이들이 그려낸 그림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묘사한 별자리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1482년 베니스에서 발행된 <히기누스의 천문학 시론(Hyginus’s Poeticon Astronomicon)>과 같은 책에 별자리 목판본이 등장합니다. 


간혹 이 목판 자료를 초기 별자리를 시각화한 전형적인 예로 언급하는 책이 있는데 사실 이 그림들은 진정한 별자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의 의도는 그저 텍스트를 장식하는 용도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적 정확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자리를 과학적 정확성을 담보하고 그려낸 첫 번째 그림은 아라비아에서 등장했습니다. 
바로 964년 경, 아라비아의 천문학자인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Ἁbd al-Raḥmān al-Ṣūfī)의  <붙박이별의 서(Kitāb al-Kawākib al-Thābita, 키타브 알 카와키브 알 타비타)>라는 책에서죠. 
이 책에는 별의 위치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을 뿐아니라 알수피 스스로 그린 다양한 별자리 그림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다만 인물들은 아라비아의 전통 복장을 입고 있으며 아르고호와 같은 별자리는 다른 시각의 도상으로 그려져 있어 
오늘날의 별자리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는 낯설게 보이기도 합니다. 

중세시대 별자리 삽화

 


그림 1> 서기 81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레이덴 아라테아(the Leiden Aratea)의 독특한 삽화.
오리온과 산토끼가 그려져 있습니다. (레이덴 대학)



별자리를 예술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중세 초기, 아라토스와 히기누스의 저작을 필사한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레이덴 아라테아>와 <할리 647(Harley 647)>로 알려진 두 개 작품이 유명합니다. 
두 개 작품 모두 9세기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알마게스트에 담긴 천 여 개 별목록은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별목록은 12세기에서야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지죠. 

당시 화가들이 별자리 그림을 그릴 때는 아라토스와 에라토스테네스, 히기누스로부터 전해지는 일반적인 설명을 참고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프톨레마이오스가 설명한 것과는 여러모로 다른 별자리 그림이 그려졌죠. 
이 작품들은 별지도의 역사로 보자면 그저 한 번 참고하고 지나갈 요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작품 자체가 매력적인 부분은 있죠.

제작년도가 81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레이덴 아라테아는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가 라틴어로 번역한 아라토스의 파이노메나를 필사한 것입니다. 
이 책을 1690년, 레이덴 대학교가 구입하면서 레이덴 아라테아(the Leiden Aratea)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별자리 삽화는 다양한 색깔로 칠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별목록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시집이기 때문에 별의 배치는 일체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려졌습니다. 

예를들어 백조자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두 날개를 활짝 편 십자가 형태가 아닙니다.(그림2)
쌍둥이자리의 쌍둥이는 갈색 피부에 옷은 거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그림3)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운 군인처럼 보이죠.  
에리다누스강자리는 강이 아닌 강의 신으로 그려졌습니다.(그림4)  
오리온자리는 그림1>과 같이 그려졌습니다. 
오리온은 좌우가 뒤바뀐 뒷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즉 하늘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려졌죠. 


그림 2> 레이덴 아라테아의 백조자리

 


그림 3> 레이덴 아라테아의 쌍둥이자리




그림 4> 레이덴 아라테아의 에리다누스강자리



영국국립도서관에 있는 할리 647(Harley 647)필사본은 제작 연대가 9세기까지 올라갑니다. 

할리 647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106~43 BC)가 번역한 파이노메나의 또다른 라틴어 번역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림 5> 할리 647의 백조자리 


할리 647이 매력적인 점은 그림 5>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별자리 형상을 히기누스의 천문학 시론(Poeticon Astronomicon) 문구가 채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별이 자유자재로 배치되어 레이덴 아라테아와 마찬가지로 별자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필사의 시대가 지난 후, 별자리에 대한 삽화 인쇄본이 1482년 독일의 에르하르트 라트돌트(Erhard Ratdolt)가 인쇄한 
<히기누스의 천문학 시론(Poeticon Astronomicon)>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라트돌트는 화가들에게 히기누스의 글에 맞는 일련의 목판화를 그리도록 했습니다. 
이 목판화들 역시 이전 필사본에 등장하는 그림처럼 자유자재로 상상한 그림입니다. 
어떤 그림은 이전에 존재하던 필사본 그림과 유사합니다만 완전히 다르게 그려진 별자리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 6>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오리온은 중세시대의 무기로 무장한 기사로 등장하죠. 






그림 6> 라트돌트의 오리온자리


1600년, 네덜란드의 휘호 흐로티위스(Hugo Grotius 또는 Hugo de Groot, 1583~1645)가 펴낸 <아라토스 총서(Syntagma Arateorum)>라 불린 파이노메나 인쇄본에는 당시 흐로티위스가 소유하고 있던 레이덴 아라테아의 삽화를 기반으로 한 판화가 담겼습니다. 

필사본에서든 인쇄본에서든 이 책에 실려 있는 삽화 중 별의 정확한 좌표를 고려하여 그려진 그림은 없습니다. 
별자리 배열대로 그리려는 시도 조차도 없었죠. 
이러한 현상은 알마게스트가 유럽에 다시 소개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중세시대 별자리 책은 천문학적 사상은 없는, 그저 장식용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별지도라 할 수 없습니다. 

 

다음글 : STAR TALES 2장 - 별지도의 역사 4. 뒤러 별지도

 

번역자 주석 :
1. STAR TALES는 영국의 천문작가 이안 리드패스(Ian Ridpath)의 별자리 개론서입니다. 
2. 원문은 이안 리드패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원문과 번역문 모두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