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끄저기/끄저기(229)
-
여름엔 아이스커피.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단 숭배한다. 나는 여름이 올때마다 행복을 느끼고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를 느낀다. 여름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 중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나는 얼죽아는 아니다. 예전에 회사생활을 할 때, 친했던 선배 하나가 얼죽아였다. 매서운 빌딩풍이 몰아치던 가산디지털 단지 골목에서 으작으작 얼음을 씹어먹는 그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옛날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코카인을 저렇게 씹어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얼죽아는 고된 정신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직장 문화의 한 단면으로 각인되어 있고 전혀 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우려내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길..
2022.07.06 -
후다닥 오이 소박이
작업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렸더니 오이와 부추가 일일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부추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오이가 너무 좋아 보여 오이 소박이를 만들 생각에 한 아름 사들고 들어왔다. 오이 소박이는 원래 다음날 만들려고 했는데, 날씨가 덥고 습하다보니 하루가 더 지나면 가뜩이나 상태가 별로인 부추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그냥 후다닥 오이 소박이를 만들어버렸다. 막상 만들고 보니 이제 오이 소박이쯤은 후다닥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또 며칠 간 아삭아삭한 오이 소박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오이와 부추를 함께 버무릴 생각을 한 우리 선조들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전 처음 만든 김치는 쾌쾌한 묵은지가 되어 때마다 꺼내 맛난 김..
2022.06.30 -
효율 vs 일방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MC가 하는 말이 귀를 한 번 때리고 들어왔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는 권위주의 방식의 국가 주도 경제가 효율적인 구간이 있다.'라는 부분이었다. (구체적인 워딩은 약간 다를 수 있음) 나는 북유럽 신화에 등징하는 룬 문자의 마법을 믿는 사람이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의미덩어리가 하나의 문자로 묶어지면 그때부터 의사소통이라는 마법이 발휘되는데 이 과정을 잘 이용한다면 의미를 왜곡시키고 사람을 속이는데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 그 단적이 예가 우리나라 정치지형에 있다. 우리 나라에는 민주당과 국힘당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치세력이 있다. 각 정당의 특성을 정확한 의미로 표현하자면 민주당은 '보수정당', 국힘당은 '극우정당'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극우정당'이 '보수정당'으로, '..
2022.06.29 -
허황된 솔루션 - 이상한 성공
2021년 7월 2일부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비만 오면 진창이 되었던 좁은 골목길과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던 공동화장실을 기억하는 나는 선진국 대한민국이 얼떨떨하기만 하다. 이 책은 딱 제목이 그 얼떨떨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어 선택한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상당히 많다. 우선 상당히 많은 데이터들이 나온다. 주로 OECD국가들의 현황을 비교하는 데이터들인데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다. 지구가 본래 상태로 회복할 수 있을 만큼의 인류 배출 오염물질과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총량을 나타내는 '지구생태용량'이라는 개념, 산업화 수준과 불평등 수준의 증감관계를 정의한 '쿠즈네츠 파동', 복지국가에서 시민권처럼 주어지는 '보편적 사회권'이라는 개념 등은 이 책을 통해서 얻을..
2022.05.30 -
그 기차들은...
그 기차들은 길을 잃었을 때 혹시 창피해서 죽지 않았을까? 누가 쓴 알로에를 본 일이 없을까? 폴 알뤼아르 동무의 두 눈은 어디 심겨져 있을까? 가시들이 있을 자리 있어? 하고 그들이 장미나무에게 물었다. - 네루다, 질문의 책 27 -
2022.04.18 -
옛 친구들을 만나다.
도 책임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이제는 LG타운이 된 마곡에서 옛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오랜동안의 공백 때문에 어색하기도 할 것이고 내가 못 알아듣는 이야기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로서 공감가는 이야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1, 2차에 이어진 자리를 마치고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1. 나는 학창 시절에 만난 어릴 적 친구가 아니라면 쉽게 마음을 열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옛 회사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나는 19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다. 되돌아보니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며 쌓은 정도 어릴적 친구들끼리 쌓은 정에 못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회사를 그만 두고 난 이후 새삼..
2022.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