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 10:31ㆍ2. 별자리 이야기/STAR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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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요한 보데의 우라노그라피아(Uranographia, 1801) 2장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남반구 별자리 사이에 아르고자리가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 노 중 하나에 카노우푸스(Canopus)가 보입니다. 이 부분은 오늘날 용골자리에 속합니다. 일반적으로 아르고호의 뱃머리는 미리내 띠에 가려진 것으로 상상되는데 우라노그라피아에서 이 부분은 'Robur Caroli II'라는 이름표가 붙은 '찰스의 참나무자리(Robur Carolinum)'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찰스의 참나무자리는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가 만든 별자리로서 지금은 사라진 별자리입니다. 아르고자리가 워낙 큰 별자리다보니 별지도 제작자들은 이 별자리를 한 장의 별지도에 그려내는데 많은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갑판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르는데 제1돛대를 그리지 못하고 대신 돛을 칭칭 두르고 있는 돛대 하나가 고물에서 뻗어나온 것처럼 그려져 있는 이 그림 역시 그런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
아르고자리는 엄밀히 말하면 사라진 별자리가 아닙니다.
'분할되었다'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아르고자리는 원래 고대로부터 알려진 48개 별자리 중 하나로서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 100~178)가 알마게스트에 기록한 별자리입니다.
18세기 프랑스 천문학자 라카유(Nicolas Louis de Lacaille, 1713~1762)는 아르고자리가 너무나 커서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별자리를 세 개 부분으로 분할하였습니다.
아르고의 선체 부분은 용골자리(CARINA)로, 선루부분은 고물자리(PUPPIS)로, 돛대 부분은 돛자리(VELA)로 분할하였죠.
이 세 개 별자리를 모두 합치면 오늘날 88개 별자리 중 가장 큰 별자리인 바다뱀자리(HYDRA)보다 28% 더 큰 별자리가 됩니다.
라카유가 만든 또 다른 별자리인 나침반자리(PYXIS)는 아르고의 돛대 바로 옆에 위치합니다만 아르고자리의 일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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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756년 발행된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의 남반구평면 천구도에 그려진 아르고호의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장 포르탱(Jean-Baptiste Fortin)의 <아틀라스 첼레스테(Atlas Celeste)>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라카유는 돛대를 휘어진, 또는 부러진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마도 수직으로 올라가는 부분은 주요 돛대를, 그리고 수평으로 꺾어진 부분은 활대를 묘사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라카유는 이 부분을 '돛을 말아올릴 때 사용하는 수평 돛대, 또는 활대'라고 언급했습니다. 돛 위에 'la Boussole'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것은 라카유가 만든 새로운 별자리인 나침반자리입니다. |
1844년 영국의 천문학자 존 허셜(John Herschel)은 이 부분을 아르고자리의 네 번째 분할부분으로 보아 돛대자리(Malus)로 부를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허셜의 제안에 호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르고 항해
아르고호는 고대 그리스에서 펜테콘테로스(πεντηκόντερος)라 부른 유형의 배입니다.
이아손과 동료 영웅들이 황금양털을 얻기 위해 오늘날 조지아가 있는 흑해의 동쪽 해변 콜키스(Colchis)로 모험을 떠날 때 타고 갔던 50개의 노를 가진 갤리선이었죠.
이아손(Ἰάσων)은 그리스 동부 이올코스(Iolcus)의 합법적인 왕위계승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올코스의 왕은 이아손의 삼촌 펠리아스(Pelias)였습니다.
이아손은 아직 어린아이였고 왕위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없는 듯 보였습니다.
장성한 이아손에게 펠리아스는 콜키스에서 황금양털을 가지고 돌아온다면 왕위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여행은 4,000킬로에 육박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이 살아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여겨 이러한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이아손에게는 우선 이 대항해를 견뎌낼 수 있는 배가 필요했습니다.
이아손은 아르고스(Argus)에게 배 건조를 부탁했습니다.
배 이름은 바로 아르고스의 이름을 딴 것이었죠.
아르고스는 파가사이 항구(Pagasae, 오늘날의 볼로스Volos)에서 아테네 여신의 감독하에 펠리온(Pelion)산의 목재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었습니다.
아테네 여신은 그리스 북서부 도도나(Dodona)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신탁에 따라 참나무 기둥을 직접 깎아 뱃머리에 달았습니다.
참나무를 베어온 곳은 코르푸(Corfu)섬 인근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참나무 숲으로서 배를 만드는 장인들이 참나무를 베어가곤 했던 곳입니다.
아테네 여신이 아르고호의 뱃머리에 달아 놓은 참나무는 신탁이 깃들어 말을 할 수 있었고 아르고호가 항구를 떠날 시간이 되면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이아손은 그리스의 위대한 영웅 50명과 함께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카스토르와 폴룩스, 시인 오르페우스와 배를 만든 아르고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헤르쿨레스조차도 자신의 과업을 중단하고 원정팀에 합류했었죠.
아르고호의 항해와 콜키스로부터의 귀환을 영웅서사시로 그려낸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Apollonius Rhodius)는 아르고호를 용감히 바다를 헤치고 나아간 뛰어난 배로 묘사했습니다.
아무리 험한 바다를 만나도 아르고호의 모든 못이 널빤지를 꽉 붙들어 맸고, 선원들이 배를 저을 때는 미풍을 받고 항해하듯 미끄럽게 바다 위를 달렸다고 합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아르고호의 항해가 황도 12궁으로 기념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어떤 연관성도 찾기 어려운 견해입니다.
충돌하는 바위를 통과하다
아르고호가 맞닥뜨려야 했던 가장 위험한 도전은 심플레가데스(Symplegades)라는 서로 충돌하는 바위를 통과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바위는 흑해 입구를 마치 한쌍의 자동문처럼 지키며 그 사이를 통과하는 배들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고 합니다.
보스포루스(Bosporus)해협을 따라 항해하던 아르고호의 영웅들은 이 공포의 바위와 거친 파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영웅들은 비둘기를 이용하여 이 난관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비둘기를 날려보내자 바위가 비둘기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비둘기는 꼬리 끝 깃털을 잃긴 했지만 바위를 무사히 통과했죠.
이어서 바위는 다시 갈라지기 시작했고 아르고호의 영웅들은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었습니다.
아테네 여신의 극적인 도움을 받은 배는 다시 닫혀오는 바위 틈을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고물에 새겨진 마스코트는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르고호는 서로 부딪히는 바위를 안전하게 통과한 최초의 배가 되었습니다.
이 배가 통과하자 바위들은 서로 떨어진 채로 굳어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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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요한 바이어의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1603)에 등장하는 아르고호는 정확성보다는 예술성을 좀더 강조한 그림입니다. 요한 바이어는 흑해 입구에서 충돌하는 바위, 심플레가데스를 통과하는 모습으로 아르고호를 그려냈습니다. 몇몇 노와 돛을 휘감고 있는 활대가 부서지는 모습으로 그려져 바위 사이를 통과할 때의 긴박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묘사대로 키에 카노우푸스가 빛나고 있습니다. |
흑해로 무사하게 들어선 이아손과 영웅들은 콜키스로 향했습니다.
그곳의 아이에테스(Aeetes)왕으로부터 황금양털을 손에 넣은 일행은 우회로를 이용하여 그리스로 돌아왔습니다.
귀환한 이아손은 코린트에 정박한 후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배를 바쳤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276~194BC)는 아르고자리가 처음으로 대양을 항해한 배를 기념하는 별자리라고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작가 마닐리우스(Marcus Manilius)도 에라토스테네스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헌사는 잘못된 것입니다.
신화에서 대양을 항해한 첫번째 배는 다나오스(Danaus)의 배가 처음이었습니다.
다나오스는 다나이데스라 불리는 50명의 딸을 데리고 아테네 여신의 도움을 받아 리비아에서 아르고스로 항해한 바 있습니다.
하늘에 새겨진 아르고자리
하늘의 아르고자리는 뒷부분만 새겨져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를 두고 돗대 앞부분은 '잘려져 나갔다'고 묘사했습니다.
별지도 제작자들은 뱃머리가 잘려나간 이유를 별지도에 구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게중에는 아라토스(Aratus, 315~243BC)의 묘사를 따라 안개에 가려져 뱃머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묘사한 경우도 있고 바이어가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 1603)에 그린 것처럼 충돌하는 바위 사이를 통과하는 모습으로 그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림 3)
영국의 시인인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이야기로 추정되는 설명을 전했습니다.
이아손이 코린트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은 때라고 합니다.
이아손은 아르고호의 뱃머리 아래 앉아 모험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회상했다고 하죠.
바로 그때 썩을데로 썩은 뱃머리가 떨어졌고, 이아손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합니다.
포세이돈은 뱃머리가 떨어져나간 배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히기누스(Hyginus)에 따르면 아르고호를 별자리로 만든 건 아테네 여신이라고 합니다.
아테네 여신은 이미 이 배가 첫 출항을 시작했을 때, 키부터 돛까지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뱃머리를 왜 제외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678년,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는 '찰스의 참나무자리(Robur Carolinum)'라는 별자리를 만들어 사라진 뱃머리 부분을 채우려 했습니다.(그림 9)
하지만 핼리가 만든 별자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르고자리 별목록에 45개 별을 기록했습니다.
이 숫자는 물병자리(AQUARIUS)와 함께 한 별자리에 기록한 별의 수로는 가장 많은 수입니다.
하지만 물병자리의 경우 아모르포토이(αμορφωτοἰ) 3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아모르포토이를 제외한 수로는 아르고자리가 알마게스트의 모든 별자리 중 가장 많은 별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각 별을 전체 별자리 형상에 맞춰 주의깊게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물자리 11별의 경우 '고물을 장식하고 있는 두 개 별 중 앞 서 있는 별'로, 돛자리 프시(ψ)별의 경우 '갑판이 잘라진 부분에 있는 별'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느껴지는 점은 두 개 키를 제외하고는 노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상상한 아르고호는 갤리선보다는 범선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천구의 회전에 따라 아르고호는 뒤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라토스는 이러한 형상을 아르고호가 항구에 접어들어 계류장에 접근하기 위해 뒤로 노를 젓는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3분할된 아르고자리
프랑스 천문학자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는 1756년 출판된 자신의 남반구 천체목록에서 3분할한 별목록을 처음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이 분할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별목록표에서 라카유는 '아르고자리를 고물(la Pouppe), 용골(le Corps), 돛(la Voilure)으로 나누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별목록표와 달리 별지도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별자리로 그려냈습니다.
간혹 나침반자리까지 포함하여 라카유가 아르고자리를 4분할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물론 나침반자리도 다른 3개 별자리(고물, 용골, 돛)와 마찬가지로 별목록표는 분할되어 있는 반면, 별지도 그림에는 하나의 영역에 그려져 있긴 합니다.
하지만 라카유 본인이 직접 아르고자리를 고물, 용골, 돛으로 나누었다고 기록했기 때문에 나침반자리는 아르고자리를 분할하여 만든 별자리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또한 고물자리와 용골자리, 돛자리에 포함되어 있는 별 중에는 아직 이 별자리들이 아르고자리 하나였을 때의 유산을 품고 있습니다.
바이어가 할당한 알파벳 목록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라카유는 알파벳 재할당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재할당 작업을 자신이 분할한 별자리 별로 하지 않고 아르고자리 전체를 기준으로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대개 가장 밝은 별에 주어지는 알파(α)별과 베타(β)별은 오직 용골자리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물자리와 돛자리에는 알파와 베타로 표기된 별이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고물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제타(ζ)로 표기하였고 돛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감마(γ)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용골자리는 제타별과 감마별이 없는 별자리가 되었습니다.
아르고자리는 여러 별지도 제작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다른 별자리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게 시각화되었습니다.
어떤 별지도에서는 신화에서 언급한 원형에 걸맞게 여러 개의 노를 가진 갤리선으로 그려지기도 했고 또 어떤 별지도에서는 고대 그리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바람을 잔뜩 품은 세 개의 돛을 가진 범선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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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파르네세 아틀라스(Farnese Atlas)에 새겨진 아르고자리의 모습 아라토스와 에라토스테네스가 묘사한 고대 그리스 초기의 아르고자리 모습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오른쪽은 루이 필립 부아타르(Louis-Philippe Boitard, 1733~1758)가 파르네세 아틀라스를 모사해낸 그림(1747)입니다. 파르네세 아틀라스의 아르고호는 네 개의 용총줄과 방패가 보호하고 있는 화려한 장식 가득한 선미, 측면에 나란히 매어 놓은 작은 방패와 두 개의 키를 갖춘 모습입니다. 펜테콘테로스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50개의 노가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에라토스테네스도 노에 대한 일체의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늘에 돛대와 키를 갖춘 배가 자리잡고 있다고만 언급했죠. 파르네세 아틀라스를 제작한 조각가는 이러한 묘사를 그대로 따랐음에 틀림 없습니다. 참고로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파르네세 아틀라스에는 별은 일체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좌표선과 별자리 형상만이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아르고자리 왼쪽으로 보이는 것은 큰개자리(CANIS MAJOR)입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네 개 빛줄기는 아마도 시리우스의 광채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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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아르고자리를 정확한 좌표에 입각하여 그려낸 첫 번째 별지도는 1515년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목판본 별지도입니다. 이 별지도의 별 좌표는 알마게스트의 별 좌표를 독일 천문학자 콘라드 하인포겔(Conrad Heinfogel)이 1500년 기준으로 교정한 값을 기반으로 새겨졌습니다. 아르고호의 형상은 대개 파르네세 아틀라스(그림 4)와 비슷하지만 몇몇 차이점도 있습니다. 우선 돛대가 훨씬 견고하고 튼튼하게 그려졌으며 그 위에 망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돛을 말은 활대가 가로지르고 있으며 고물에는 지붕을 덮은 선실이 얹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선체 측면에는 방패가 일체 없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에서 측면 방패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판화에 측면 방패를 그리지 않은 건 의외의 일입니다. 반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언급하지 않은 돛이 등장하는데 뒤러 이후 그려진 아르고호는 돛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뒤러의 아르고호도 파르네세 아틀라스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키만 있을 뿐, 노는 일체 보이지 않습니다. 뒤러는 보이지 않는 뱃머리를 구름 뒤에 가려져 있는 것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각 별은 프톨레마이오스가 기록한 별목록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좀더 남쪽까지 내려온 키 끝 부분에, 44번을 달고 있는 별이 카노우푸스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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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요하네스 헤벨리우스의 소비에스키의 창공(Firmamentum Sobiescianum, 1690)에 실린 아르고자리는 상당히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은 빌럼 얀손 블라우(Willem Janszoon Blaeu)의 그림(그림8)에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헤벨리우스 별지도의 다른 별자리 그림처럼 아르고호 역시 거울상으로 그려졌습니다. 돛이 감긴 활대가 돛대에 비스듬하게 걸려 있습니다. 커다란 삼각형 돛을 달도록 활대를 걸어놓은 배치를 '래틴 리그(lateen rig)'라고 합니다. 당시 지중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형태죠. 고물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키에 카노우푸스가 그 모습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뱃머리는 'Robur Caroli(로부르 까롤리)'라는 표기아래 에드먼드 핼리가 새로 소개한 '찰스의 참나무자리' 뒤로 숨겨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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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요한 보데가 우라노메트리아 이전에 펴낸 작은 별지도인 <천체소개(Vorstellung der Gestirne, 1782)>에 그려진 아르고자리는 한 장의 차트에 일부분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삼각돛 활대에 접힌 돛이 매달려 있는 이 그림은 1729년 존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가 아틀라스 꾈레스티스(Atlas Coelestis)에 그린 그림과 같습니다. 고물에서 활대처럼 뻗어나온 돛대가 있는 우라노그라피아의 그림(그림 1)과 차이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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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지도 제작자인 빌럼 얀손 블라우(Willem Janszoon Blaeu, 1571~1638)의 천구의(1602)에 그려진 아르고호 모습입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예술가 얀 피테르스준 산레담(Jan Pieterszoon Saenredam, 1565~1607)이 그려낸 아르고호는 세 개의 돛대를 갖춘 범선으로 그려졌습니다. 산레담이 상상한 아르고호는 신화에서 그려낸, 또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상상한 아르고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전통을 따르지 않은 여러 요소 중 하나는 키가 하나만 등장하며, 그 하나의 키에 카노우푸스가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로 선원 한 명이 바다의 깊이를 재려는 듯 무게추를 매단 줄을 잡고 있습니다. (순전히 우연으로, 이 무게추 위에 있는 별은 나중에 라카유에 의해 화가자리 베타별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천구의의 남반구에 새겨진 별은 피터 디르크스준 케이저(Pieter Dirkszoon Keyser, 1540~1596)가 네덜란드의 첫번째 교역항해 중 진행한 관측 정보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지만 블라우는 프레데릭 드 후트만(Frederick de Houtman, 1571~1627)의 관측 정보를 기반으로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을 추정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드 후트만은 자신의 별목록을 완성하기 전에 블라우의 천구의를 봤음에 틀림없습니다. 드 후트만이 별목록에서 아르고자리 별들의 위치를 묘사하는데 산레담의 범선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드 후트만이 별목록을 발행한 것은 1603년입니다. 에드먼드 핼리는 고전에서 벗어난 아르고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여기에 영국적인 요소까지 더했습니다.(그림 9) 하지만 대부분의 별지도 제작자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아르고호의 모습을 유지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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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에드먼드 핼리의 남반구 별목록(1678)에 그려진 아르고호는 전형적인 영국상선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고물과 제1돛대 위에 성 게오르그의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핼리는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남반구 관측 여행을 떠나고 귀환할 때 동인도회사로 가는 배를 이용했습니다. 범선에 매달아 놓은 깃발은 이 배가 핼리가 타고 다닌 배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핼리가 새로 만든 별자리인 '찰스의 참나무자리(Robur Carolinum)'가 뱃머리에 피어오르는 구름과 함께 놓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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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석
1. 공식 88개 별자리에 해당하는 별자리는 라틴어 철자를 대문자로 표기하였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소문자 혼용으로 표기하였습니다.
2. STAR TALES는 영국의 천문작가 이안 리드패스(Ian Ridpath)의 별자리 개론서입니다.
3. 원문은 이안 리드패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4. 본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포스팅한 글입니다.
원문과 번역문 모두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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